시와 憧憬

봄날은 간다 / 손로원

cassia 2018. 3. 31. 03:57

[시가 있는 아침]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손로원
(1911~73)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출처: 중앙일보]2017.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