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41) 봉래꼬리풀]

cassia 2017. 9. 21. 14:51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

(41) [봉래꼬리풀] 금강산·설악산에만 서식하는 ‘聖花’ 베로니카

 

글 월간산 박정원 부장대우 / 사진 문순화 작가
입력 : 2017.09.21 (목) 10:31 [575호] 2017.09


문 작가, 설악산에서 3번 확인… 꽃범 꼬리 닮아 이름 유래


봉래꼬리풀은 이름에서 세 가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봄 기달(금강), 여름 봉래, 가을 풍악, 겨울 개골에서 알 수 있듯 ‘봉래’는 금강산의 여름 이름이다. ‘꼬리’는 꽃이 피는 모양이 동물의 꼬리같이 생겼다 해서 붙었다. 따라서 여름에 금강산에서 피는 야생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문순화 사진작가가 1992년 처음 설악산에 발견한 봉래꼬리풀.


그런데 이 야생화 학명이 어디서 본 듯하다. ‘Veronica kiusiana var. diamantiaca’다. 베로니카란 이름이 첫 머리에 나온다. 베로니카는 라틴어 vera참된와 eicon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는 또한 기독교의 전설상의 성녀聖女의 이름이다. 털이 촘촘한 씨앗주머니가 있는 복수초·변산바람꽃·노루귀·개불알꽃 같은 야생화에는 공통적으로 베로니카의 학명이 붙는다.


베로니카란 학명을 가진 야생화에 재미있는 전설이 전한다. 예수가 등에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던 도중 너무 무거워 잠시 쉬었다. 이때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손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주었다고 한다. 그 손수건에 예수의 초상이 생겼고, 예수의 피가 베로니카의 몸에 꽂혀 있던 꽃에도 뚝뚝 떨어졌다. 그래서 이 꽃을 그 뒤부터 베로니카라고 불렀다고 한다.


종소명 kiusiana는 ‘일본 규슈의’라는 말이다. 아마 규슈에 봉래꼬리풀같이 생긴 야생화가 있는 듯하다. 그 아래 나오는 변종명 diamantiaca는 ‘한국 금강산에 분포하는’의 뜻이다. 종합하면, 털이 촘촘한 씨앗주머니가 있는 일본 규슈에 있는 종이지만 한국 금강산에 변종으로 서식하는 봉래꼬리풀로 해석 가능하다.


여기서도 몇 가지 사실이 파악 가능하다. 변종이지만 금강산에만 서식한다고 했다. 금강산 고유종이자 한국 특산식물이라는 사실이다. 자연스레 희귀식물군에 포함된다. 멸종위기종 Ⅰ급에 지정돼 있다.


금강산 고유종이 어쩌다 설악산까지 아무도 모르게 살짝 내려와 혼자 조용히 바위틈에 터전을 잡았다. 하지만 전국을 샅샅이 누비고 다니던 문순화 사진작가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1992년 8월, 문 작가는 <설악산의 꽃>이라는 책을 만들기 위해 현진오 박사와 함께 설악산 야생화를 탐방하려고 미시령에서 출발해 마등령으로 올라섰다. 그 지역은 너덜겅으로 계속 이어진다. 그 너덜지대 사이 보라색 예쁜 꽃이 보란 듯이 자태를 뽐냈다. 문 작가는 매의 눈으로 봉래꼬리풀이라는 야생화를 놓치지 않았다. 현 박사는 그 자리에서 우리 자생종 봉래꼬리풀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줬다. 몇 개체 되지 않은 봉래꼬리풀이 다소곳이 자리를 잡고 있는 듯했다.
 

1996년 8월에는 야생화 동호회와 설악산을 답사했다.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타고 가다 역시 바위틈에서 자생하고 있는 봉래꼬리풀을 렌즈에 고스란히 담았다. 2004년 9월에는 설악산 서쪽 자락 안산에서 12선녀탕 가기 전 바위 밑에 제법 큰 군락을 이루고 있는 봉래꼬리풀을 보았다. 이전보다 한 달 늦게 본 2004년에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었다. 문 작가는 남들이 한 번 보기도 힘든 봉래꼬리풀을 설악산에서만 3번이나 보며, 그것도 꽃과 열매를 맺은 모습을 전부 목격한 것이다. 눈의 호사를 마음껏 누린 셈이다.


문 작가는 다른 지역에서는 본 적이 없다. 일반 도감에서도 강원도에만 서식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지면 금강산과 설악산에서만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식물도감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잎은 달걀 모양이며, 표면은 녹색, 뒷면은 붉은색이 돈다. 꽃은 8월에 피며 연한 보라색이고 총상꽃차례에 달린다. 꽃차례는 윗부분의 잎겨드랑이와 끝에서 자라고 털이 있다. 포는 피침형 또는 좁은 피침형이고, 꽃자루는 다소 길다. 꽃부리는 4개로 갈라지며 열편은 달걀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다.


열매는 삭과. 줄기 높이는 20m에 달하고, 줄기에 다소 붉은빛이 돌며 긴 털이 있다.


금강산 비로봉의 사스래나무와 눈잣남의 숲 속에서 자란다. 강원 인제 이북의 한두 곳에 분포하며, 개체수도 매우 적다. 자생지 확인 및 유전자원의 현지 보전이 시급하다.’ 


학명 Veronica kiusiana var.
       diamantiaca (Nakai) T.Yamaz.


생물학적 분류
피자식물문(Angiospermae)
쌍자엽식물강(Dicotyledoneae)
통화식물목(Tubiflorae)
현삼과(Scrophulariaceae)
개불알풀속(Veronica)


문순화 생태사진가 문순화(83세)

 

원로 생태사진가는 2012년 13만여 장의 야생화 사진을 정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걸친 과업이라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본지는 환경부와 문순화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의 야생화’를 연재한다.


출처 / 월간 (575호) 2017.09.21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