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42) 한라부추]

cassia 2017. 11. 2. 02:37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42) 한라부추]

타켓 신부 이름 간직한 부추같이 생긴 한라산 고유종

 

월간산 글 박정원 부장대우 / 사진 문순화 작가
입력 : 2017.11.02 10:52 [576호] 2017.10

 

 

고산식물로서 덕유산까지 서식지 확대… 보랏빛 꽃이 자극적


한라부추, 이름만 봐도 한라산에서 서식하는 부추같이 생긴 야생화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한라산 고유종이자 당연히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고유종은 학명 Allium taquetii에서도 한라부추의 성향이나 고향이 잘 드러난다. 학명에서 앨리움allium은 부추같이 생긴 식물을 총칭한다. 파속屬식물, 즉 파나 양파·마늘 같은 식물은 전부 앨리움이란 학명을 지닌다. 양파속·부추속도 다 이를 지칭하는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타쿠에티taguetii란 종소명에 의미가 있다. 한라부추를 처음 발견한 프랑스 신부 타켓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명칭이다. 타켓Emile Joseph Taquet·1873~1952은 서품을 받은 직후 1898년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타계할 때까지 신부로서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자생식물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의 종소명이 붙은 식물은 한라부추 외에도 섬잔대, 갯취, 해변취 등 제주에서 자라는 것만 13종에 이른다.


부추는 가을에 알싸한 마늘냄새를 풍겨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한라부추도 예외가 아니다. 문순화 사진작가가 한창 산사진을 찍으러 전국을 누빌 때 한라산 풍경을 찍고 내려오는 길에 이 알싸한 내음과 자극적인 보랏빛 꽃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1989년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 가는 10월의 한라산 1100고지에서였다. 그냥 산부추인 줄 알고 렌즈에 담았다. 서울 와서 고 이영노 박사에게 보여 줬다. 이 박사는 “산부추가 아니고 한라부추”라고 정정해서 가르쳐줬다. 아마추어가 보면 산부추와 한라부추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시판하는 식물도감이나 야생화도감에는 한라부추의 서식지를 한라산과 가야산, 지리산, 광양 백운산 등지의 정상 부근에 서식하는 고산식물로 설명한다. 하지만 문 작가는 일찌감치 덕유산에서도 목격했다. 아마 지구온난화로 한라부추의 북방한계선이 상당히 올라온 듯하다.

 


▲ 한라부추는 알싸한 내음과 자극적인 보랏빛 꽃으로 사람들 발길을 멈추게 한다. 문순화 작가가 1989년 한라산 1100고지에서 처음 촬영했다.


2000년대 초 덕유산 야생화 책을 만들 때 현진오 박사와 함께 덕유산을 답사했다. 중봉 사면에 무수한 군락을 이룬 한라부추를 목격했다. 개체수가 오히려 한라산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문 작가는 “아마 지금도 개체수는 덕유산이 더 많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한라산에서 보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리산에서 군락을 이룬 한라부추를 봤다. 이영노 박사가 야생화 관찰을 위해 공단의 협조를 얻어 노고단에서 묵고 있을 때, 문 작가는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올라가 종주능선을 타고 가 노고단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창 종주 중이던 세석에서 잠시 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세석 주변은 생태계가 완전 복원됐을 정도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 종주 능선을 벗어나 사면으로 가자 알싸한 냄새를 풍기며 자극적인 보랏빛 꽃으로 유혹하는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문 작가는 “최근에는 한라부추를 보지못했지만 그동안 다닌 몇 군데서 계속 봤기 때문에 개체수 유지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라부추는 한라산고유종이자 우리 특산물이지만 멸종위기종은 아니다.


야생화도감에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고산식물이면서 다년생 초본이다. 산의 능선을 따라 바위틈에서 자란다.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나 반그늘이 진 곳의 물기가 많은 곳에 주로 서식한다. 키는 약 30cm. 부추처럼 생긴 잎은 길이가 15~20cm, 폭이 0.3cm로 3~4개 달린다. 뿌리는 긴 난형으로 겉은 검은 섬유로 덮여 있고, 한 군데서 여러 개의 작은 뿌리가 뭉쳐 있다. 꽃은 보라색으로 8~9월에 피며, 꽃줄기의 끝에 3~30개의 꽃이 펼쳐지듯 달린다. 수술은 6개. 열매는 10~11월쯤 둥글게 달리며, 안에 들어 있는 종자는 검은색이다. 식물 전체를 식용하는데 마늘냄새가 난다.’
 

 

문순화 생태사진가

 

문순화(83세) 원로 생태사진가는 2012년 13만여 장의 야생화 사진을 정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걸친 과업이라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본지는 환경부와 문순화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의 야생화’를 연재한다.


출처 / 월간 (576호) 2017.11.02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