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 (75) 누가 김옥균을 죽였을까)

cassia 2017. 1. 21. 17:14



누가 김옥균을 죽였을까

 


“대단한 재주를 품었지만 힘든 때를 만나 특별한 공을 이루지 못한 가혹한 죽음이 있었다.” 일본 도쿄에 있는 한 묘원의 김옥균 묘비 첫 구절이다. 묘라고는 하지만 시신에서 수습해온 머리털 몇 가닥, 의복 일부가 매장물 전부였다. 김옥균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지 10년째 되던 1894년 이른 봄, 상해의 한 여관에서 조선 조정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한다. 암살로도 분이 안 풀렸던 조선 조정은 김옥균 시신을 조선으로 운반하여 부관참시한 후, 조선 8도에 그 사지를 나누어 보내서 모든 사람이 보게 하였다. 묘비의 구절처럼 가혹한 죽음이었고, ‘보상 없는’ 적막한 삶이었다.

김옥균의 비극적 죽음은 갑신정변 실패 직후, 일본 상선 치도세마루호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향하던 10년 전, 그 순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조용만의 일본어 소설 '배 안에서'(1942)는 김옥균을 비롯해 박영효, 서재필 등 갑신정변 주역이 치도세마루호에 오른 12월 7일부터 배가 인천항을 출항하는 12월 9일까지, 사흘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김옥균이 조선 젊은 엘리트들과 함께 ‘혁명’적 거사를 일으킨 것은 12월 4일. 하지만, 불과 3일 만에 혁명은 실패로 끝났고, 김옥균은 목숨을 부지한 몇몇 동지들과 함께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인천으로 향했다. 9시간 걸려 인천에 도착하여 정박 중인 일본 상선 치도세마루호에 승선한 것은 12월 7일 자정 무렵이었다.

청나라(중국) 및 조선과의 외교 문제를 거론하며 배에서 내리라고 요구하는 일본 공사와 하선을 거절하는 김옥균 일파 간의 갈등이 소설 ‘배 안에서’의 주된 내용이다. 갈등의 이면에는 조선과 일본, 중국을 둘러싼 복잡한 동아시아 정세가 놓여 있었다. 중국의 속국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전근대적 조선. 일본에 의존하여 근대조선 건설이라는 혁명적 거사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조선 신진 엘리트들의 고뇌. 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 간의 치열한 다툼 등이다. 이 복잡한 정치적 구도 속에서 지원을 약속한 일본마저 외교적 입장을 내세워 등을 돌리면서, 치도세마루호에 승선한 김옥균 일파는 고립무원의 사지로 내몰리고 소설은 클라이맥스를 향해간다.

다행히 김옥균의 의지에 공감한 일본인 선장의 결정에 따라, 배가 출항하게 되면서 소설은 끝난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 일본에 도착한 김옥균의 삶은 어땠을까. 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지만 김옥균은 죽음에 이르는 10여 년 동안 치도세마루호 상황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현실을 겪는다. 외교적 골칫거리로 전락한 김옥균이 필요 없어진 일본은 김옥균을 추방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고, 청나라와 조선은 끊임없이 김옥균을 제거하려 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김옥균은 조선, 중국, 일본 세 나라가 힘을 합쳐 서양 위주로 재편되는 세계 질서에 맞서자고 역설하면서 조선의 자주와 근대화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넓게는 아시아 전역의 패권을 두고 중국과 일본의 경쟁이 격렬해진 정치 상황에서 김옥균의 이런 순수한 이상이 수용될 리 만무하였다.

19세기 말, 조선과 일본, 중국 간의 힘의 역학 구도 속에서 김옥균의 죽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최근 들어 중국, 일본,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상황이 또다시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얼마 전 일본의 한 외교전문가는 한국이 예전의 중화 중심적인 질서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는 악의에 찬 예측을 내놓고 있다. 일본과 중국, 그 사이에 끼여 있는 한국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130년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적어도 130년 전, 김옥균을 사지로 내몰았던 무력한 조선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까지 더해진 동북아시아의 이 혼탁한 정치 상황을 헤쳐나갈 힘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진 : 비운의 김옥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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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미래대 산학협력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7.01.21(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