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 (77) ‘격야 ‘ 3·1절을 기념하는 이유

cassia 2017. 2. 18. 17:29



‘격야 ‘ 3·1절을 기념하는 이유

 


살다 보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과 마주할 때가 있다. 기독교 운동가 윤치호가 1919년 5월 31일 토요일 오전에 겪은 일도 그랬다. 그날 윤치호는 11시쯤 서울 종각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7, 8명이 나타나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경찰이 달려가자 그중 한 사람이 주머니칼로 자기 목을 찌르고는 쓰러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이미 석 달이나 지났고, 일제의 지배는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었으니 말 그대로 무의미한 죽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 거리의 사내는 그렇게 죽음을 선택했다.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를 평소 지론으로 삼고 있던 윤치호였던 만큼 그 사내의 죽음은 그의 ‘논리’와 ‘합리적 판단’을 벗어난 일이었다. 그 충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그 광경을 본 후 윤치호는 평소 지론에서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말을 그날 일기에 적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눈을 부릅뜨고 지옥이나 진배없는 곳으로 돌진해 들어가는 이 사람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 사내의 무모한 용기, 무용한 정열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3`1운동의 여파는 거대했다. 3`1운동으로 많은 사람이 투옥되고, 죽음에 이르렀지만 결국 조선의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본다면 3`1운동은 분명히 실패한 혁명이었다. 그러나 평소의 지론을 무너뜨릴 정도로 윤치호를 감동시켰던 ‘공공의 선’을 향한 사람들의 ‘신념’과 ‘용기’는 다양한 형태로 조선 사회 전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희곡 ‘隔夜’(격야`1920)도 그중 하나이다. ‘격야’는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의 'on the Eve'(전날 밤`1860)를 번역한 것으로 번역자는 연극인 ‘현철’(玄哲)이다.

원작은 농노해방 운동이 전개되던 변혁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불가리아 청년과 러시아 소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조선어 번역은 장편으로 이루어진 원작의 긴 내용 중 터키의 식민 상태에 있던 불가리아의 정치적 현실에 주로 집중하고 있다. 1860년대 변혁기 러시아의 현실을 돌아보고, 투르게네프 문학의 특징을 음미할 만한 여유가 번역가 현철을 포함하여 이 작품을 게재한 ‘개벽’ 잡지, 그리고 식민 치하의 조선인, 그 누구에게도 없었다.

국민의 10% 정도만이 글을 읽을 줄 알았으며, 잡지를 살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지닌 사람이 거의 없었던 조선이었다. 그래도 현철은 ‘격야'를 잡지에 게재하였다. 불가리아 청년의 독립 의지와 같은 우회적 방법을 통해서라도 3`1운동에 헌신했던 수많은 조선인의 신념과 용기를 사람들에게 환기시키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 사람들의 수가 소수라도 상관이 없었다. 단 한 명이라도 ‘격야’를 읽고 3`1운동에 헌신한 사람들의 열정과 신념을 기억하며 조선의 자주와 독립을 향해 나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곧 3`1절이다. 매년 3월 1일이면 집집이 국기를 달고 국가적 차원에서 기념식을 거행한다. 100여 년 전 역사의 한순간을 우리가 이처럼 오랜 세월 기념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올해에는 유난히도 많은 사람이 ‘애국’이라는 용어를 입에 올리고 있다. 기념일도 아닌데 태극기가 날리고 촛불이 밤을 밝힌다. 난무하는 수많은 애국자 중, 누가 3`1운동의 정신에 부합한 것인지는 역사가 판단해줄 것이다. 역사는 더디지만, 항상 바른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 개벽’ 잡지 1920년 8월호에 게재된 ‘격야(隔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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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미래대 산학협력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7.02.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