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26) |솔붓꽃]

cassia 2016. 6. 28. 18:52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26) | 솔붓꽃] '아이리스' 전설 간직한 멸종위기종

 

글·월간산 박정원 부장대우 / 사진·문순화 작가
입력 : 2016.06.28 13:07 / 월간산 [560호] 2016.06

 

식물도감엔 경기·충남이 서식처로… 전남 해안·강화 등지서 개체 확인

 
‘아이리스(Iris)’,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했던 드라마 제목이라 귀에 익숙하다. 야생화에 있어서 아이리스는 붓꽃류에 붙은 이름이다. 꽃봉오리의 모양이 붓을 닮아 이름 붙여졌으며, 원래 의미는 그리스어로 ‘무지개 여신’을 뜻한다.


이탈리아에 아이리스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어느 마을에 착하고 고귀한 성품을 지닌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로마의 왕자와 결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왕자가 병으로 죽었다. 홀로 된 아이리스는 청혼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항상 푸른 하늘만 동경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길에 젊은 화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화가는 청혼을 했고, 열정에 감동한 아이리스는 결국 수락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살아 있는 것과 똑같은 꽃을 그려 달라”고. 젊은 화가는 온 열정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아이리스는 그림을 본 순간 그 아름다운 자태에 감동했다. 하지만 그림에는 향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그림에 살포시 내려앉더니 키스를 했다. 그 순간 아이리스는 감격에 차 눈을 반짝이면서 화가에게 키스를 했다. 이후 푸른 하늘빛의 꽃, 아이리스는 그들이 처음 나눴던 키스의 향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 지금도 꽃이 필 때면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달콤한 키스의 향기를 간직한 아이리스. 보라색 꽃을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붓꽃류는 전 세계적으로 200여 종이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13종이 자생한다. 각시처럼 작고 예쁜 꽃을 피운다 해서 이름 붙여진 각시붓꽃이 붓꽃 중에 가장 일찍 개화하며, 노란색의 꽃을 피우는 금붓꽃, 고유종인 노랑붓꽃, 노랑무늬붓꽃이 뒤이어 자태를 뽐낸다.

 

문순화 사진작가가 2014년 5월 강화 볼음도에서 렌즈에 담은 보랏빛 솔붓꽃.


뿌리로 밥 짓는 솥을 닦는 솔을 만든다고 해서 명명된 솔붓꽃은 5월쯤 개화한다. 식물도감에는 경기도와 충남 등지에 서식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문순화 사진작가가 솔붓꽃의 남방한계선을 전남 해안까지 끌어내렸다.


문 작가는 2013년 완도와 관매도, 해남 땅끝마을 등지에 지네발란을 보러 내려갔다가 77번국도 인근 마을에서 솔붓꽃을 처음 봤다. 꽃 모양과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중부지방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평소 야생화에 관한 정보를 주고 받던 환경부 담당과장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담당과장도 신기해했다. 그러면서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다.


다음날 서울에 올라와서 메일로 보냈다. 과장은 사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며 “부산까지는 확인됐지만 전남 해안지방은 처음이다”고 밝혔다. 마침 환경부는 솔붓꽃을 2012년 멸종위기Ⅱ급으로 지정한 뒤 새로운 서식지에 대해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근데 난데없이 문 작가가 전남 해안까지 남방한계선을 끌어내리자 부랴부랴 수정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작가는 이후 경기도 광주 근처에 서식처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몇 군데 확인하러 갔으나 번번이 찾지 못했다. 이미 서식지가 상당부분 파괴된 뒤였다.


이듬해인 2014년 5월 어느 날 강화도로 식물을 보기 위해서 가는 길이었다. 우연히 지인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혹시 솔붓꽃을 볼 수 있는가 싶어 간다고 하자, 그 지인은 “이미 봤다”고 했다. 강화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볼음도에 내려 솔붓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는 바로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인 현진오 박사에게 전화를 했다. 현 박사는 “정말이냐”며 그 뒤 같이 방문해 상당히 많은 개체가 서식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솔붓꽃의 북방한계선까지 수정하는 쾌거였다.


식물도감에는 솔붓꽃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다년초로 근경(일종의 뿌리줄기)은 옆으로 뻗고 묵은 잎의 섬유로 싸여 있다. 뿌리는 부드러운 암갈색이고, 솔 제조용으로 쓰인다. 화경은 높이 1.8~6cm. 잎은 선형으로 꽃이 진 뒤에 길어져 길이 4.5~32cm, 너비 1~4cm이다.


꽃은 5월에 보라색으로 피고, 열매는 6~7월에 맺는다. 화경 끝에 2개의 포가 1개의 꽃을 감싸며 소화경은 길이 2~6mm, 포는 타원상 피침형으로 길이 1.6~3.6cm이며 가장자리는 자색을 띤다.’


학명 Iris ruthenica Ker-Gawler
식물계(Plantae)
피자식물문(Angiospermae)
외떡잎식물강(Monocotyledoneae)
붓꽃과(Iridaceae)

 

 

문순화 생태사진가

 

문순화(82세) 원로 생태사진가는 2012년 13만여 장의 야생화 사진을 정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걸친 과업이라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본지는 환경부와 문순화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의 야생화’를 연재한다.

 

출처 / 월간산 [560호] 20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