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25)ㅣ조름나물]

cassia 2016. 5. 8. 18:09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 25조름나물]

 

물속에서 조는 듯 흰꽃으로 눈길 끄는 멸종위기종

 


태백·고성·대암산 등지서 서식 확인… 북유럽에선 맥주 호프 대용품으로 쓰기도

 

 

계 식물계(Plantae) / 문 피자식물문(Angiospermae)
강 쌍떡잎식물강(Dicotyledoneae) / 과 용담과(GENTIANACEAE)/b


 

이름도 희한한 조름나물이다. 웬 조름? 문법상으로는 졸음이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먹으면 졸린다고 해서 조름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그래도 명색이 식물인데 또 나물은 무슨 나물인가. 어린잎과 줄기는 삶아서 나물로 무쳐먹을 수 있다고 해서 명명됐다고 한다. 조름나물의 작명 비화다.

 

하지만 꽃을 보면 절대 졸음이 올 것 같지 않다. 잠을 확 깨게 할 만큼 눈길을 끈다. 신비까지는 아니지만 신기하게 생겼다. 학명에서 그 신기함을 엿볼 수 있다. 학명이 ‘Menyanthes’. 그리스어 menyein(표현하다)과 anthos(꽃)의 합성어로, 꽃이 서서히 퍼지는 데서 유래했다. 벚꽃같이 일제히 활짝 피었다가 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눈길을 끌면서 넓게 퍼진다. 신기한 야생화는 군락이 많지 않다. 쉽게 찾아 볼 수도 없고 한국이 원산지이지만 자생지가 몇 군데 안 된다. 정부에서 보호하고 있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Ⅱ급 식물이다.

 

문순화 사진작가가 조름나물을 처음 본 건 고 이영노 박사와 함께 1992년 백두산 야생화 답사를 갔을 때였다. 물이 있는 곳에 군락을 이뤄 하얀 꽃을 핀 모습이 영락없이 자기를 보란 듯 뽐내는 듯했다. 이 박사가 조름나물이라고 가르쳐줬다. 눈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돌아왔다. 눈에 어른거렸다. 조름나물은 북방계이고 물에 서식하는 수경식물이다.

 

몇 년 뒤 마침 환경부에서 조름나물 생태조사 한다고 나섰다. 문 작가는 조사요원으로 발탁됐다. 2000년 즈음 환경부 담당자와 같이 조름나물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 찾지 못했다. 이 박사가 “대관령 수로에 가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샅샅이 뒤졌으나 그곳에서도 허탕을 쳤다.

 

2006년 울진에 서식한다는 말을 듣고 갔다. 연못에서 군락을 이룬 자생지를 발견했다. 마을 주민들은 “꽃이 핀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문 작가도 그 뒤 몇 번을 갔는데 몇몇 개체는 확인했지만 꽃을 보지 못했다. 물속이지만 더 이상 성장을 못 하는 듯했다. 그 연못은 이후 매립되면서 울진의 조름나물은 영원히 사라졌다.

 

이어 2009년쯤 남한에서 활짝 핀 조름나물의 하얀 꽃을 강원도 고성에서 처음 봤다. 논두렁 수로에 여러 개체가 군락을 이뤄 자생하고 있었다. 문 작가는 고성에 세 번이나 가서 확인했다. 논 주인은 “원체 많은 사람들이 조름나물을 찾아 촬영하고 가느라 논두렁이 헐어 논에 물을 댈 수 없을 정도”라며 “조름나물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고 항변했다. 멸종위기종이니 강원도나 고성군에서 적절히 관리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뒤 태백 삼수동 돌밭마을 인근 목장주인이 “이상한 꽃들이 연못에 많이 피었다”고 지방신문에 제보해서 보도가 됐다. 식물 전문가들과 문 작가를 포함한 야생화 애호가들이 일제히 찾았다. 백두산에서 본 것보다 더 큰 군락을 이룬 조름나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암산 용늪에도 있다고 이 박사가 알려줘 환경부 직원과 함께 갔다. 두 군데 서식을 확인했으나 그곳에서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 지금 남한에 서식하는 북방계 수경식물인 조름나물은 태백, 고성, 양구 대암산 용늪 등지에만 남아 있다.

 

식물도감에 기록된 조름나물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25cm 정도 자라는 수생 다년초. 잎의 길이는 5~10cm. 잎은 땅속 줄기에서 자라고 줄기는 없다. 잎 사이에서 길게 자란 꽃대 위에 많은 꽃이 이삭 모양으로 모여 곧게 선 상태로 아래로부터 차례로 피어 올라간다. 꽃은 짤막한 깔때기꼴이고,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져 꽃잎을 이룬다. 꽃잎 표면에는 흰털이 깔려 있다. 꽃의 지름은 1~1.5cm이고, 연분홍색을 띤 흰색 꽃이 7~8월에 핀다. 이 식물은 비상식량으로 이용돼 왔고, 잎은 말려서 차 대용으로 사용한다. 식물 전체가 피를 맑게 하는 강장제이며, 즙을 내서 사용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식욕을 돕거나 해열, 류머티즘 통증을 완화시키며 생리불순을 안정시킨다. 식물 중의 매운맛은 강장작용을 해 소화불량, 식욕부진에 유효하다. 스웨덴에서는 잎이 아편 대용으로 알려져 있다. 맥주의 쓴맛을 내기 위해 호프의 대용품으로 쓰는 일도 있다고 한다.’

 

글· 월간산 박정원 부장대우 / 사진·문순화 작가
입력 : 2016.05.16 13:00 [559호] 2016.05

 

문순화 생태사진가

 

문순화(82세) 원로 생태사진가는 2012년 13만여 장의 야생화 사진을 정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걸친 과업이라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본지는 환경부와 문순화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의 야생화’를 연재한다.

 

[출처] 월간 산 [559호] 20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