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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그림] 장 프랑수아 밀레 ‘봄’

cassia 2017. 4. 4. 10:38

[이야기가 있는 그림]깨어나는 모든 것이 눈부시다 2017-03-20 (월)

 

▲ 장 프랑수아 밀레 ‘봄’, 1868년~1873년 경, 유화, 86×111cm, 오르세 미술관

 

세상에 매혹적인 것이 많지만, 자연만큼 감동을 주는 것이 있을까?
전에는 그냥 ‘자연을 그렸구나’하며 지나쳤던 풍경화에 자꾸 마음이 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화사한 색감, 촉촉한 기운, 퍼지는 햇살이 계절감을 말하고 있는 이 작품. 프랑스 화가 밀레(1814~1875)의 ‘봄’이다. 봄기운을 받아 깨어나는 자연 안에서 모든 것이 눈부시다. 이 작품은 밀레가 말년에 그린 풍경화로, 프레데릭 아트만에게서 주문을 받아서 그린 ‘사계’ 시리즈 중 ‘봄’이다. 투박하고 진실 되게 인물을 표현했고, 성실하게 자연을 관찰했던 밀레. 그가 그린 봄은 그의 작품 중 많지 않은 풍경화여서 더더욱 눈길을 끈다.


‘이삭줍기’, ‘만종’ 등에서 삶의 경건함을 표현한 밀레가 사람이 아닌 풍경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인물화에서 보여준 그의 화풍처럼 농촌 풍경 역시 묵묵하고 정감이 넘친다. 이렇게 찬란한 자연을 느끼고 있자니 그가 평생 몰두했던 노동자의 고된 일상, 빈부 격차는 잠시 잊게 된다.


그러고 보면 봄이 되는 길목은 유독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예술가가 계절을 묘사했다. 하이든은 오라토리오 ‘사계’를 썼고, 차이코프스키는 1년을 사계절이 아니라 12달로 나누어 ‘사계’를 남겼다. 특이한 것은 달마다 푸시킨, 톨스토이 등 시인의 시를 골라 음악으로 옮겼다는 점이다. 시와 음악, 자연이 어우러진 낭만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비발디의 ‘사계’ 역시 유명한데, 계절마다 소네트를 직접 써놓아 눈길을 끈다.
 

“드디어 봄이 왔다. 새들은 기뻐하며 즐거운 노래로 인사를 나눈다. 산들바람의 숨결에 시냇물은 정답게 속삭이며 흐른다. 하늘은 갑자기 검은 망토로 뒤덮이고 천둥과 번개가 몰려온다. 잠시 후 하늘은 다시 파랗게 개고 새들은 또다시 즐거운 노래를 부른다.”


변덕스런 봄의 기운을 음악으로 표현한 비발디. 그가 느낀 봄 풍경처럼 밀레가 그린 ‘봄’도 다채로운 모습이다. 밀레는 ‘사계’ 작업을 하면서 특히 ‘봄’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전면의 전원풍경을 비롯해 멀리 떠 있는 쌍무지개가 인상적이다. 소나기가 내려서 촉촉해진 자연은 생기를 내뿜고, 다양한 녹색 톤은 생동감을 극대화한다. 물기를 머금은 땅에서는 흙냄새가 날 것 같고 공기마저 투명하게 느껴진다. 멀리 있는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농부, 길과 울타리, 과수원, 숲이 우거진 작은 언덕까지.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이미 온 봄, 지금 오고 있는 봄, 앞으로 올봄 등 다양한 봄의 향연이다. 그림 아래쪽 햇빛이 닿지 않은 곳은 봄을 기다리며 생명이 움틀 준비를 하고 있고, 무지개 부근은 이미 찬란한 봄이다. 하늘의 색도, 땅의 색도 어두운 곳이 있는가 하면 밝은 곳이 있다. 화려하지만 변덕스럽게 찾아오는 봄 풍경을 밀레는 이렇게 부분 부분 다른 속도로 묘사했다. 봄이 와도 누군가의 마음은 여전히 을씨년스럽고, 누군가의 마음에는 이미 꽃이 핀 것처럼 말이다.


자연의 어둠 속에서 갑자기 등장한 소나기와 빛, 그리고 무지개는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이다. 무엇보다 조명 판처럼 그림을 환히 비추고 있는 무지개를 보니 저 환영이 내 마음으로도 들어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하다.


“나는 봄의 소나기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눈은 봄비가 내리는 풍경만을 위해 존재한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초록 잎과 꽃이 만발한 나무가 있는 풍경 속 비와 무지개만을 느끼기 위해서다.”


소나기가 내리고 무지개가 뜨고 세상이 촉촉해지는 봄의 찰나를 담기 위해 밀레가 얼마나 집중했는지 짐작이 된다. 최재천 교수가 “섞어야 아름답다”는 말을 했는데 땅과 하늘, 빛과 어둠, 물과 흙이 혼재한 이 그림은 그런 이유에서 너무 매력적이다. 죽을 만큼 괴로운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되돌리게 만드는 것이 자연의 힘이다. 비발디, 하이든이 남긴 사계 중 ‘봄’을 들으며 이 그림 속 어딘가에 나를 놓아두어 보자.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는 농부처럼 그 순간만큼은 평온해질 것 같다. 올봄 내 인생에도 저런 무지개가 뜰까?


이지현 문화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교직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