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영화

[이야기가 있는 그림] ‘르누아르’ 평범함 속에서 찾는 특별함

cassia 2016. 12. 1. 10:57

[이야기가 있는 그림] ‘르누아르’ 평범함 속에서 찾는 특별함 2016-11-28(월)

 

일상 속 행복한 순간을
작품에 녹여낸 ‘르누아르’


오동통한 볼, 뽀얀 피부, 아름다운 표정, 밝고 빛나는 색감에 보드라운 양감까지. 르누아르(1841년~1919년) 그림 속에서 아이는 천사가 되고, 여인은 여신이 된다. 유명 포토그래퍼가 각을 잡아주고 뽀얗게 포토샵까지 처리한 작품 같으니 말이다. 뱃놀이를 하고, 소풍을 가고, 무도장에서 춤을 추고, 그의 그림 속 파리지엔은 유쾌하고 빛나는 모습뿐이다. 그래서 요즘같이 시절이 어수선할 때 이런 그림을 보면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대체 저들은 뭐가 저리 행복한 거지?’ 상대적 박탈감에 배가 아파온다. 그렇다면 르누아르는 왜 이런 주제에 집중하게 되었을까?
“그림은 즐겁고 예뻐야 한다. 세상에는 유쾌하지 않은 게 너무 많은데 그림까지 그렇게 그릴 필요가 있을까?”

 

나만 빼놓고 세상 사람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이렇게라도 아름다운 순간을 찾고자 했다니 왠지 마음이 놓인다. ‘고통은 지나간다. 오직 아름다움만 남는다’는 르누아르의 지론처럼, 그는 일상의 행복한 순간을 작품으로 만들어 영원히 남게 했다.


유독 괴짜가 많이 모인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 르누아르는 온화하고 유순한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모네나 세잔처럼 실험적이지도 고흐처럼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던 르누아르. 그는 중산층의 일상을 소재로 삼아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고 그렇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위의 두 작품은 같은 시기에 제작되기도 했고 크기마저 같을 뿐 아니라 무도회를 주제로 삼고 있어서 거의 모든 전시에서 쌍을 이루어 선보여 왔다. 사실 이 두 작품에 시골,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1892년의 일이다. 르누아르가 처음 작품을 선보인 1883년에는 제목이 그냥 ‘춤추는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시골, 도시라는 배경이 아니라 춤을 추는 이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걸려있는 두 작품을 보면 서로 다른 게 뭔지 자꾸 찾게 된다.


‘시골의 무도회’는 왠지 흥이 나는 음악이 연주되고 있을 것만 같다. 밤나무가 자연의 정취를 느끼게 하고, 젊은 여인의 즐거운 표정이 우리를 무도회로 이끈다. 이에 반해 ‘도시의 무도회’는 격식을 갖춘 모습이다. 잔잔한 음악이 흐를 것 같고, 주인공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약간의 긴장감이 감돈다. 두 작품 속 주인공을 보면 남자는 같지만 여자는 다르다. 시골의 무도회 속 여인은 르누아르의 모델이자 아내인 알린 샤리고이며, 도시의 무도회 속 여인은 인상파 화가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한 모델 수잔 발라동이다. 두 작품 모두에서 인생의 즐거운 순간을 포착해 낸 르누아르 스타일이 드러난다.


“나는 폼 잡지 않고 영원성을 간직한 그림이 좋다. 냄비를 닦다 잠깐 멈춰선 하녀의 모습도 올림푸스의 주노 여신 못지않게 위대하다.”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동작,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르누아르의 그림은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 영혼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르누아르는 열세 살에 도자기공장에서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고 루브르 미술관에서 본 와토, 부셰의 작품에 이끌려 화가를 꿈꾸었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풍경보다 인물에 집중한 르누아르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생명력을 담아냈다. 말년에 관절염으로 고생할 때도 붓을 손에 묶어가며 그림을 그렸고,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평소 ‘인생이란 끝없는 휴일’이라고 했던 르누아르는 작품을 통해 ‘평범한 일상 속에 가장 값진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일까? 2000년대 조형예술가 슈어드 존슨은 르누아르의 ‘시골 무도회’를 커다란 청동 주물로 만들어 전시했다. ‘Time for fun’이라는 제목처럼 조각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라. 시간을 초월해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묘한 능력이다. 평범하다는 게 더없이 무기력하게 여겨지는 요즘, 일상을 기념비처럼 정지시킨 르누아르 작품이 묘하게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나의 사소한 일상도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산다는 게 어찌 보면 별것 아닌데 말이다.


이지현 문화칼럼니스트

 

<그림설명>
위) 슈어드 존스 ‘Time for fun’
왼) 르누아르 ‘시골의 무도회’, 1883년, 180×90cm,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미술관
 오) 르누아르 ‘도시의 무도회’, 1883년, 180×90cm,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미술관


출처 / 한국교직원신문 2016-11-28(월)

 

책도 있습니다..^^

 

행복한 화가 르누아르  르누아르와 나 예술가와 나 | 양장본
밀라 보탕 지음 | 이상미 옮김  | 한림출판사  | 2013년 03월 20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