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영화

[이야기가 있는 그림]디에고 리베라 ‘꽃장수’ / 오늘을 그려 내일을 이야기하다

cassia 2016. 11. 14. 08:45
[이야기가 있는 그림]디에고 리베라 ‘꽃장수’ / 오늘을 그려 내일을 이야기하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디에고 리베라 ‘꽃장수’ / 오늘을 그려 내일을 이야기하다 2016-11-07(월)

 

 멕시코 과거와 현재를
 벽화에 호기롭게 담아낸
 매력적인 카사노바 ‘디에고’

 

디에고 리베라 ‘꽃장수’, 1935년, 목판에 템페라화, 121.3×121.9cm,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이 남자가 늘 궁금했다. 대체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이란 말인가? 프리다 칼로의 인생을 쥐락펴락했고, 평생 수많은 여인을 농락한 남자. 한편으론 국가의 자주적 미래를 그려 멕시코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디에고 리베라(1886년~1957년) 이야기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리다 칼로의 남편 정도로 지나치기에는 너무 큰 인물임이 분명하다.


프리다와 디에고. 전시장에서 이 두 거장의 작품을 함께 보면 그 차이가 확 다가온다. 프리다의 그림이 내면의 상처를 후벼 파는 개인적 주제로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반면, 디에고의 작품은 크기 자체도 훨씬 크고 멕시코 농민, 주체사상 등 사회적인 주제를 담은 호방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술적인 열정 못지않게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했던 디에고는 파리에 머물던 1911년, 러시아 여인과 결혼했지만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고, 부인의 친구와 만나 딸을 낳기도 했다. 이후 또 한 번의 결혼과 파경을 거쳐 1929년 프리다를 만났다. 하지만 이 결혼도 디에고가 프리다의 여동생과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결국 이혼에 이르렀고, 그러다 얼마 후 재결합했다. 그런 디에고에게 “바람둥이다, 거칠고 야만스럽다”라는 평판이 늘 따라다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프리다는 21살이나 많은 디에고를 어떻게 사랑하게 됐을까? 이 둘은 교육부의 벽화 작업을 하면서 만났고, 디에고는 교통사고로 이미 30여 차례 수술을 받은 프리다가 화가의 길을 걷도록 격려했다. 이미 일가를 이룬 대가를 바라보는 존경이 사랑이 되고, 몸이 아파서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었던 프리다에게 세상과 맞서 싸우는 디에고는 충분히 멋져 보였을 것이다. 모순되지만 재능 많고 세상에 거침없이 덤비는 남자, 바람기로 여자를 질리게 만들지만 보통 사람은 갖지 못한 열정을 갖고 있던 남자. 향락적이며 이기적이지만 뚝심 있는 이 남자에게 그래서 많은 여성이 마음을 빼앗겼나보다.
 

사랑한다고 가질 수도 없고 이해받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인물, 디에고 리베라는 호색한이었지만 멕시코의 과거와 현재를 그렸고 벽화 운동의 주역이었다. 멕시코는 1910년 시작된 혁명으로 어수선했고, 사람들은 불안함을 이겨내고자 했다. 이런 시기에 예술가들은 미술관에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닌, 큰 담벼락과 공공장소에 벽화를 그려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그 중심에 디에고가 있었다. 스페인 식민지 지배 이전의 멕시코의 영광, 멕시코 역사 속 중요한 인물, 자주적인 국가의 미래, 멕시코 농민을 그린 것이다.


디에고는 어린 시절 ‘엔지니어’라고 불릴 정도로 장난감을 뜯고 붙이는 솜씨가 남달랐고, 20대에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거장들의 작품을 만났으며 파리에서 피카소, 브라크 등과 교제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멕시코의 전통적 아름다움에 매료돼 유럽과 미국에게 지배당했던 멕시코 민중의 고통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벽화 뿐 아니라 농민들의 일상을 담은 회화 역시 디에고만의 개성이 넘쳐흐른다. 그의 작품에는 꽃이 많은 나라답게 허리가 부러지도록 꽃짐을 진 남자, 어린아이들, 온갖 종류의 새와 식물 등이 자주 등장한다.
 

“쓰레기 같은 유럽 물건을 늘어놓은 문화가 아니라 아메리카의 아름다움을 찾자”고 한 디에고의 말처럼 위의 작품 ‘꽃장수’에는 큰 꽃바구니를 메고 일어서려는 멕시코 인디오가 있다. 혼자서는 커녕 뒤에서 받쳐주어도 일어서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땅을 꾹 짚은 두 손과 무릎이 꽃의 무게를 가늠하게 한다. 바구니 속의 꽃뭉치는 엄청 싱싱하고 아름답지만 생계로 꽃짐을 매는 꽃장수에게는 삶의 무게일 뿐이다. 소외된 대중의 희망, 두려움, 고통을 이렇게 생생하고 강하게, 현실을 보란 듯이 직설적으로 그려낸 디에고 리베라.


“지금까지의 내 작업 중에 가장 훌륭했던 것은 내가 진심으로 느낀 것들에서 나온 것이며 가장 끔찍한 작품은 내 보잘 것 없는 재능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한 그의 말에서 모순적이지만 매력적인 한 예술가의 진심을 느껴본다.

 
이지현 문화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교직원신문 2016-11-0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