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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그림] van Gogh「탕기영감」

cassia 2016. 10. 26. 18:38

[이야기가 있는 그림] 무명화가들의 든든한 후원자 ‘탕기영감’ 2016-10-24 (월)

 

<그림설명>
빈센트 고흐 <탕기 영감의 초상>, 1887년, 캔버스에 유채, 92×75㎝, 로댕미술관


 고마웠던 고흐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는
 파리에 머문 동안  그의 초상화를 세 번이나 그렸다


누가 봐도 마음씨 좋아 보이는 이 할아버지. 대체 고흐(1853년~1890년)와 어떤 사이였기에 초상화를 그려주었을까? ‘탕기 영감’이라고 불렸던 줄리앙 프랑수아 탕기는 몽마르트르에서 물감과 캔버스를 파는 화방을 운영했다. 당시 많은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괴팍한 성격 탓에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고흐를 피사로, 로트레크 같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소개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또 고흐가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속은 따뜻하고 여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난해서 모델도 없고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한 고흐를 식사에 초대해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니 고흐에게는 자신을 험한 세상과 이어준 특별한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탕기 영감은 고흐뿐 아니라 가난한 다른 화가들에게도 돈 대신 그림을 받고 물감과 캔버스 등을 스스럼없이 내주었다. 그래서 당시 많은 화가가 그를 ‘탕기 아저씨’라고 부르며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한다.


네덜란드 출신 고흐에게 멋쟁이와 예술가로 즐비한 파리 낯설었고, 그곳에서 술과 담배로 찌들어갔다. 그런 파리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떠나기 전, 탕기 영감의 화방에 들러 고마움의 표시로 이렇게 다정한 초상화를 그려준 것이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후광이 아름다운 사람을 그리고 싶다”고 했고, 그런 의미에서 파리에 머무는 동안 세 번이나 탕기를 그렸다. 탕기 영감 역시 생전에 값도 안 나오던 고흐의 그림을 받고 물감을 내주었고, 고흐의 자살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갈 만큼 후원자를 자처했다. 오베르의 공동묘지에 고흐의 안식처를 마련해주고, 고흐를 회상하며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가여운 빈센트, 당신 작품을 볼 때마다 울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당신은 너무나 슬픈 사람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느꼈고, 그래서 이룰 수 없는 것을 소망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나눈 사이여서일까? 탕기 영감의 초상화는 그의 넉넉하고 선한 성품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 그림에서 탕기 영감의 온화한 심성을 더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배경에 잔뜩 그려 넣은 일본의 목판화 우키요에다. 후지산과 벚꽃, 일본 기녀의 모습 등 화려한 배경 때문에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키요에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본 에도시대에 주로 가부키 배우나 기녀들을 소재로 한 목판화로, 원색적인 색채, 단순한 구성이 특징이다. 19세기 유럽에 수출하는 도자기 포장지로 우키요에가 사용됐는데 이를 본 인상주의 화가들이 마치 신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특히 고흐의 우키요에 사랑은 남달라서 ‘탕기 영감의 초상’뿐 아니라 ‘플럼꽃이 피는 나무’,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비 내리는 다리’ 등 수많은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파란 하늘과 유황빛 태양을 유독 좋아했던 고흐에게 대담한 구도와 선명한 색상이 특징인 우키요에는 신선한 모델이었나 보다. 얼마나 빠져들었으면 우키요에에 있는 한자를 뜻도 모르는 채 한 글자씩 정성껏 베껴서 완성하기까지 했다. 의미나 내용이 아닌 시각적 조형성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매혹적인 우키요에를 배경으로 편안하게 앉아있는 탕기 영감을 보니 이 둘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림을 완성했을지 궁금해진다. 세상 사람과의 소통이 어려웠고 스스로 천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고흐. “언젠가 물감값보다 내 그림이 비싸지는 날이 올 것”이라 되뇌며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짧은 생을 마친 그다.


“나는 세상에 큰 빚과 책임을 지고 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예술적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한 고흐의 말이 ‘탕기 영감의 초상’에서는 그 어느 작품에서보다 더 빛을 발하는 듯하다.


이지현 문화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교직원신문 2016-10-24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