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조향미,「온돌방」(낭송: 김상현)

cassia 2016. 10. 2. 02:03

조향미,「온돌방」(낭송: 김상현) 

 

 


조향미,「온돌방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 시집『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실천문학사, 2006(2006년 4분기 우수문학도서)


조향미,「온돌방」을 배달하며


우리도 이런 온돌방에서 자랐습니다. 방 한쪽에 무가 마르고 호박씨가 널려 있고 메주 뜨는 냄새가 나던 방에서 콩나물처럼 쑥쑥 자랐고 향기로운 술처럼 익어갔습니다. 문고리 쩍쩍 얼어붙던 겨울날에도 여물게 자랐습니다. 지금의 아이들도 이런 온돌방에서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가며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했으면 좋겠습니다. 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문학집배원 도종환 2007-02-12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