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강영은,「허공 모텔」(낭송 권나연)

cassia 2016. 9. 13. 00:48

강영은,「허공 모텔」(낭송 권나연)

 

 

강영은, 「허공 모텔」


꽁무니에 바늘귀를 단 가시거미 한 마리,
감나무와 목련나무 사이 모텔 한 채 짓고 있다 
저, 모텔에 세 들고 싶다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 하나 끌어들여
꿈 속 집같이 흔들리는 그물 침대 위
내 깊은 잠 풀어놓고 싶다


매일매일 줄타기하는 가시거미처럼
그 사내 걸어 온 길 칭칭 동여맨다면
나, 밤마다 그 길 들락거릴 수 있으리  


그 사내, 쓰고 온 모자 벗어버리고
신고 온 신발도 벗어던져
돌아갈 길 아주 잃어버린다면
사내 닮은 어여쁜 죽음 하나 낳을 수 있으리


그 죽음 자랄 때까지
빵처럼 그 죽음 뜯어먹으며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날개 옷 한 벌
자을 수 있으리


저, 허공 모텔에 들 수 있다면,


시_ 강영은 – 1956년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2000년 《미네르바》로 등단했으며, 시예술상, 한국시문학상 수상 및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시집으로 『녹색비단구렁이』, 『최초의 그늘』, 『풀등, 바다의 등』 등이 있다.

낭송_ 권나연_ 배우. 연극 ‘갈매기 2013’, ‘리어왕’ 등에 출연.

출전_ 녹색비단구렁이 『녹색비단구렁이』(종려나무)
음악_ guitar SFX 중에서
애니메이션_ 송승리
프로듀서_ 김태형


강영은, 「허공 모텔」을 배달하며


거미줄로 만든 허공 모텔? 그곳은 기억과 상상력의 공간이다. 집이 아니라 굳이 모텔인 것은 삶의 공간이 아니라 떠돌이 노마드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가 시인에게는 어쩌면 시(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속 집같이 흔들리는 그물 침대인 거미줄에는 모기나 날파리나 하루살이 정도가 걸려들기 도 한다. 소나기 지난 후 이슬이 걸리고 이슬 속에 하늘이 영롱하게 걸려있을 때도 가끔 있지만.

 

문학집배원 문정희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