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안」김종해 (낭송: 이숙영)
가을 문안
김 종 해(낭송: 이숙영)
나는 당신이 어디가 아픈지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오, 말할 수 없는 우리의 슬픔이
어둠 속에서 굳어져 별이 됩니다.
한밤에 떠 있는 우리의 별빛을 거두어
당신의 등잔으로 쓰셔요.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만 가혹하게 빛나는 우리의 별빛
당신은 그 별빛을 거느리는 목자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요.
종루에 내린 별빛은 종을 이루고
종을 스친 별빛은 푸른 종소리가 됩니다.
풀숲에 가만히 내린 별빛은 풀잎이 되고
풀잎의 비애를 다 깨친 별빛은 풀꽃이 됩니다.
핍박받은 사람들의 이글거리는 불꽃이
하늘에 맺힌 별빛이 될 때까지
종소리여 풀꽃이여……
나는 당신이 어디가 아픈지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습니다.
김종해「가을 문안」을 배달하며
당신이 어디가 아픈지 알고 있으면서도 말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기 때문이고, 말하는 것 자체가 아픔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디가 아픈지 알면서도 말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이 슬픔이 굳어져 별이 되고, 핍박받는 사람의 이글거리는 불꽃이 별빛이 되리라 생각하며 어둠을 견디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슬픔, 종소리가 되어 울리고 풀꽃이 되어 환하게 피어나길 바랍니다.
문학집배원 도종환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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