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최금진,「새들은 강릉에 가서 죽다」(낭송 최금진)

cassia 2014. 11. 11. 05:02

최금진,「새들은 강릉에 가서 죽다」(낭송 최금진)
 

 


최금진, 새들은 강릉에 가서 죽다

 

나의 생일엔 예쁜 창녀를 선물해줬으면 좋겠다
커다란 달 모양의 귀고리를 한 여자, 달에서 온 여자
캄캄한 것이 유일한 재능인 여자, 나를 죽여줄 수 있을 것같은 여자
꽃보다 텔레비전을 볼 때 겨우 웃는 여자
생일 축하해요, 나를 혓바닥으로 꺼주는 여자
눈 내리는 강릉에 가고 싶다고, 깡통에 모아둔 게 이십만원이라고
몸무게가 영에 가까우면 좋겠다고, 어차피 천국에 못 가지만
눈 내리는 겨울에 대관령 자작나무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뼈다귀만 남은 산맥이 허연 입김처럼 눈발을 날릴 때
산새들이 날아가고, 덧없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이유조차 날아가고
창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여자는 없으니
누구나 늙으면 돌아갈 곳은 보건소와 원룸과 무덤뿐
첫 번째는 누군가의 아내였고, 두 번째는 어떤 아이의 엄마였다고
일이 끝나도 마중 나오는 사람은 없고
여자의 이름도 그때그때 달라서 오늘은 왼쪽, 내일은 오른쪽
치킨을 좋아하나요, 나는 수면제를 좋아해요
비행사와 결혼할 거야, 이 무서운 속도, 지구의 자전이 무섭지 않게
가끔은 거리에서도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자
변기 위에 앉아 있으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두려움
지옥이 있으면 좋겠어요, 모두 울고 있거나 벗고 있을 테니까
나의 생일에 배달된 예쁜 창녀
강릉, 어느 눈 내리는 항구에서 이제 막 돌아온 배들을 다시 보내며
생일 축하해요, 내 살아온 시간을 조용히 불어서 꺼주는 여자


시·낭송_ 최금진 - 최금진은 1970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2001년 창비 신인 시인상에 당선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새들의 역사』 『황금을 찾아서』 등이 있다.
출전_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창비)
음악_ 심태한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최금진, 「새들은 강릉에 가서 죽다」를 배달하며

 

은, 아, 참 쓸쓸하고 아프네요.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한 남자가 꿈꾸는 예쁜 창녀는 시적 화자와 대칭되는 ‘자기 밖의 자기’, ‘타자화된 자아’겠지요. “변기 위에 앉아 있으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두려움”은 남자의 것이기도 하고, 예쁜 창녀의 것이기도 하겠지요. 남자는 가슴에 절망과 암울만 가득하니, “누구나 늙으면 돌아갈 곳은 보건소와 원룸과 무덤뿐”이라고 중얼거리겠지요. 이 남자가 생일에 눈 내리는 강릉에 가고 싶다는 애인을 만나 여행을 떠나기를! 기차 안에서 무릎을 맞대고 앉아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치킨을 좋아하나요, 나는 수면제를 좋아해요”라는 얘기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며. 그곳이 꼭 강릉이 아니라도 좋겠지요. 그 여행에서 꿋꿋하게 돌아오면, 다시는 죽음 따위에 정신을 팔지 말아요! 죽음보다 더 많은 삶을 살기를 바래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바람과 별이 쉬어가는 뜨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