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이근화, 「두부」(낭송 이근화)

cassia 2014. 10. 21. 05:14

이근화, 「두부」(낭송 이근화)

 

 

 

이근화, 「두부」

 

일주일에 한 번씩 두부가 배달된다
달걀 두 줄과 함께
신선하고 물렁한 것들은 삼키기에 좋지만
머릿속에 혹이나 키우려고
세 끼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은 것은 아니다

 

혹에는 쌍욕이 들었다
밥을 먹지 않으면 그것이 튀어나온다
잘 썰어놓은 두부는 거울 같고 칼날 같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며 정말 칼처럼 꽂힌다
그러나 먹어야 한다

 

화가 나도 밥이 먹히고
기뻐도 밥이 먹히고
혹이 뭐라 그래도 밥이 먹히고
숟가락이 무섭다 젓가락은 더 그렇지만

 

혹에도 감정이 들었다
꿈속에서 쌍욕을 날렸는데
그것이 바깥으로 넘쳤을까 봐
나는 아침에 조심조심 두부를 먹는다


시·낭송_ 이근화 - 이근화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고, 시집으로 『칸트의 동물원』, 『우리들의 진화』 등이 있다.
출전_ 『차가운 잠』차가운 잠  (문학과지성사)
음악_ 심태한
애니메이션_ 제이
프로듀서_ 김태형

 

이근화, 「두부」를 배달하며

 

날씨가 쌀쌀해지면, 뜨겁고 부드럽고 달콤한 두부 탕수 생각에 침이 괴지요. 그걸 먹고 나면 아무리 큰 실의라도 이기고 인격이 굳고 늠름한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낙관주의에 젖게 되니까요. “머릿속에 혹이나 키우려고”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먹고, 날마다 두부를 먹은 것은 아니겠지요. “신선하고 물렁한”, 그래서 삼키기에 좋은 두부를 먹었다면, 생명약동과 더불어 더 멋진 인생 도약(跳躍)을 보여야 마땅하겠지요. 두부는 이 세상의 모든 선한 의지들과 낙관주의의 중심을 이루고, 그 반대편에 있는 혹은 이 세상에서 번성하는 모든 악의 중심을 이루겠지요. 그 좋은 것들을 삼키고 쌍욕을 하고 진부한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날마다 두부를 먹는다면 조금씩 착해져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가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바람과 별이 쉬어가는 뜨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