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마종기, 「연가 13」(낭송 정인겸)

cassia 2014. 11. 4. 03:47

마종기, 「연가 13」(낭송 정인겸)

 

 


마종기, 연가 13

 

1

 

여자에게서 취할 것은
약간의 미모와
약간의 애교와
여자에게서 취할 것은
약간의 요리와
봄날의 이불.
그리고는 흩어지는 꽃잎으로
그 이름을 떠날 것이다.

 

2

 

한때는 구기도 공부도 좋아하고, 한때는 포카도 술도 연애도, 한때는 음악도 회화도 시도 소설도, 그리고 결혼도 의사도 죽음도 좋아했지만 결국 한 50년 만이라도 몰입될 것은 무엇인가.

 

세상에도 아는 놈만 안다. 번연히 오래 못 살 환자의 비밀. 멋모르는 대면의 술잔. 그리고 다음번의 목차를, 적은 소외감을. 세상에도 모르는 놈만 모른다. 잠자리에서도 소홀한 목숨의 경계를.


시_ 마종기 - 마종기(1939~ )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의사 시인이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방사선과 의사로 오래 일했다.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뒤 꾸준히 시집을 펴냈다. 시집으로 『조용한 개선』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등이 있다.
낭송_ 정인겸 - 배우. 연극 '2009 유리동물원', '맹목' 등에 출연.
출전_ 마종기 시전집 『마종기 시 전집』(문학과지성사)
음악_ 배기수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마종기, 「연가 13」을 배달하며

 

마종기의 초기시인 「연가」 연작시들을 외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스무 살 무렵 「연가」 9번과 10번을 좋아해 줄줄 외고 다녔지만, 나이가 드니 담담하게 지난 사랑을 술회하는 13번도 좋아지더군요. 여자에게서 약간의 미모와 약간의 애교와 약간의 요리만이 취할 가치라는 고백에서 젊은 남자의 자기중심적 서툰 사랑의 흔적이 엿보이네요. 아직 여자도 인생의 참맛도 모르는 것은 남자가 젊고 철이 없으며 무른 인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한때 미쳤던 포커, 술, 연애도 심드렁해질 나이가 되면 갑자기 인생에 대해, 여자에 대해 더 많은 진실을 깨닫고 진면목과 마주치게 되겠지요. 그때 비로소 인생에서 한 50년 몰입할 그 무엇도 찾을 수 있겠지요. 이 시의 백미요 진경은 “번연히 오래 못 살 환자의 비밀. 멋모르는 대면의 술잔.”이라는 구절이에요. 아무 상관없는 사실의 무심한 병치에서, 문득 죽음과 삶의 시차(時差)에 대한 인식에 눈 뜨고 비로소 인생을 깊이 바라보게 된 자의 한 줄기 애잔함이 이마를 직격(直擊)하지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바람과 별이 쉬어가는 뜨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