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이규리, 「청송 사과」(낭송 오은지)

cassia 2014. 10. 7. 09:00

이규리, 「청송 사과」(낭송 오은지)
 

 


이규리, 「청송 사과」

 

전화로 주문을 했더니 그 남자는 먹기엔 그냥 괜찮다며 흠 있는 사과를 보내주었다
험, 흠, 내 흠을 어떻게 알고서

 

어제오늘 이미 여러 차례 떨어진 내 하관은 바닥이니 거리에 떠다니는 삼엄한 얼굴은 또 무슨 생각들을 놓친 낙과냐
비나 번개를 안아
제 흠들은 자신의 몸으로 모서리를 삼킨 거지
말도 못하고 심중에 울음을 넣은 거지
그렇게 견딘 시간은 울퉁불퉁 붙고 아물어

 

과도의 끝이 닿자 이제야 길었던 통점이 떠나가고
뭐, 큰일이나 날 것 같았던 당신의 법도 잘려나가고

 

자른 채로 잘려나간 채로 그냥 묻어 살기엔 괜찮으니 도리어 면면하지
흠 있는 존재, 단물까지 나는 이 서사의 사랑스러움을 견딜 수 없으니


시_ 이규리 - 이규리는 1955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하고, 시집으로 『앤디 워홀의 생각』, 『뒷모습』 등이 있다.

낭송_ 오은지 - 배우. 연극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등에 출연.
출전_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문학동네)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김은미
프로듀서_ 김태형


이규리, 「청송 사과」를 배달하며

 

서리 내리고 바람 차가워지면 사과의 단맛도 깊어지지요. 아침마다 단단한 사과 과육을 베어 먹으면, 심장이 튼튼해지고 피도 맑아지는 느낌. 이규리의 「청송 사과」는 햇빛의 양명함이 넘치는 가을 아침에 읽기 좋은 시네요. 크고 매끈한 사과의 상품가치가 더 높지만 흠 있는 사과가 더 맛있지요. 시인은 흠 있는 청송사과를 받아놓고, 그 흠들이 “비나 번개”를 안은 것이며 “몸으로 모서리를 삼킨” 결과라고 일러줍니다. 흠은 울퉁불퉁한 세월을 견디느라 생겨난 것. 하긴 평생 살며 한두 가지 흠을 갖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을까마는 흠은 기어코 내면의 통점(痛點)이 되고 콤플렉스가 되지요. 사과는 단맛이 그 격을 결정짓고, 사람은 인격이 곧 그의 격이지요. 이 가을엔 아무 흠이 없다고 뻔뻔하게 우기는 사람보다는 제 영혼에 흠이 많다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과 더 자주 만나고 싶어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바람과 별이 쉬어가는 뜨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