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욱, 「3분간의 호수」(낭송 서동욱)
서동욱, 「3분간의 호수」(낭송 서동욱)
서동욱, 「3분간의 호수」
비가 온 뒤 플라자 호텔 앞 도로는
수면이 맑게 닦인 호수 같다
붉은 신호등이 차들의 침범을 막아 서울
한복판에 3분간 딱
켜져 있는 호수
그 위를 잠자리 한 마리가
공중에 필기체를 휘갈기며 날아간다
가는 꼬리에 뽀글뽀글 가득 찬 저
낳고 싶다는 본능이, 겨우 물로 매끼한 정도의
수심 2mm의 호수에 혹했다
저쪽 횡단보도엔 벌써
파란 등이 이쪽으로 건너오겠다는 듯 깜박거리고 이제
10초 후면 배때기에 타이어 자국 새기며 사라질 호수
물 위를 꼬리로 톡톡 쳐보고 기쁜 듯 홀라당거리며
S자로 6자로 소란스레 비행하는 저 욕망
배고 낳고 죽는 모든 껍데기들을 지구의 탄생부터
떠받치고 있던 저 에너지는
그러나 지구에서는 천수를 다했다는 듯,
이윽고 우주의 시간이 땡 파란 불로 바뀌며
소공로에서 좌회전 대기하고 있던 개들이 풀려나와
덮쳐버린다
● 시·낭송_ 서동욱 - 1969년 서울 출생.
시집 『랭보가 시쓰시를 그만 둔 날』, 『우주전쟁 중에 첫사랑』 등이 있으며,
이밖에 지은 책으로 『차이와 타자-현대 철학과 비표상적 사유의 모험』,
『들뢰즈의 철학-사상과 그 원천』,
『일상의 모험-태어나 먹고 자고 말하고 연애하며, 죽는 것들의 구원』,
『익명의 밤』 등이 있음. 현재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
● 출전_ 『랭보가 시쓰기를 그만 둔 날』(문학동네)
●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서동욱, 「3분간의 호수」를 배달하며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보는 시랄까
(우주야, 너도 얼마나 모래알처럼 작으냐?).
인간 남녀의 성욕과 교접이라는 것도 우주의 잣대로 재면
“가는 꼬리에 뽀글뽀글 가득 찬 저/낳고 싶다는 본능이, 겨우 물로 매끼한
정도의/수심 2mm의 호수에 혹”하는 것. 적막하다. 탈진한 세일즈맨이 객지
여관방에 돌아와 홀로 멍하니 들여다보는 포르노 영상처럼, 적막하고 노골적이다.
서동욱의 시들은 읽는 사람을 시무룩하게 만든다. 그런데 재미나다. 그 재미는
한 편 한 편 야무지게 빚은 상황극을 보는 지적 재미이며, 인간과 인간관계와
화자 자신, 그러니까 삶 전반에 대한 비관과 냉소와 짜증을 가차 없이, 그러니까
발랄하리만치 노골적으로 표현한 시구에 대한 감각적 재미다.
우주 잣대로 재면 한 사람의 생은 3분에 불과하다. 그렇다 한들, “10초 후면
배때기에 타이어 자국 새기며 사라질 호수/물 위를 꼬리로 톡톡 쳐보고 기쁜 듯
홀라당거리며/S자로 6자로 소란스레 비행하는 저 욕망”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시인의 기쁨을 우주라한들 어쩌지 못하리.
문학집배원 황인숙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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