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손현숙, 「공갈빵」(낭송 문지현)

cassia 2012. 5. 28. 06:18
    손현숙, 「공갈빵」(낭송 문지현) 손현숙, 「공갈빵」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꽃구경하던 봄날, 우리 엄마 갑자기 내 손을 놓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걸음을 떼지 못하는 거야 저쯤 우리 아버지, 어떤 여자랑 팔짱 착, 끼고 마주오다가 우리하고 눈이 딱, 마주친 거지 “현숙이 아버......” 엄마는 아버지를 급하게 불렀고, 아버지는 “뭐라카노, 아주마시! 나, 아요?” 바바리 자락 휘날리며 달아나버린 거지   먹먹하게 서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어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배가 고픈 건지, 아픈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서러웠거든 우리가 대문 밀치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어디 갔다 인자 오노, 밥 도고!” 시침 딱 갈기고 큰소리쳤고 엄마는 웬일인지 신바람이 나서 상다리가 휘어지게 상을 차렸던 거야 우리 엄마 등신 같았어   그러면서 오늘까지 우리 엄마는 아버지의 밥때를 꼭꼭 챙기면서 내내 잘 속았다, 잘 속였다, 고맙습니다, 그 아버지랑 오누이처럼. 올해도 목련이 공갈빵처럼 저기 저렇게 한껏 부풀어 있는 거야   시_ 손현숙 - 1959년 서울 출생.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사진 산문집 『시인박물관』 등이 있음. 현재 문광부 파견 도서관작가, 〈동물자유연대〉를 통해 자료를 받아 숙성시킨 ‘버려진 동물들에 대한 에세이’ 원고를 넘기고 출간을 기다리는 중.   낭송_ 문지현 - 배우 및 성우. 연극 〈경숙, 경숙아버지〉 등에 출연.   출전_ 『손』(문학세계사)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손현숙, 「공갈빵」을 배달하며 참, 그런 시절이 있었다. 돈 한 푼 못 벌어도, 몇 날이고 멋대로 집을 비우다 돌아와도, 그런 아버지를 온가족이 가장이라고 떠받들어줬었다. 그러니 장성한 남자들은 요즘같이 막중한 책임감이나 구속감을 느끼지 않고 선뜻 장가를 갔다. 가정환경조사서의 장래희망란에 많은 여학생들이 ‘현모양처’나 ‘영부인’이라고 적어 넣던 시절이었다.(현모양처나 영부인이나 결국 같은 말이다). 「공갈빵」은 소위 페미니스트가 보기에 혐오스러울 수도 있는 시다. 화자조차 ‘우리 엄마 등신 같았어’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 말은 사십여 년이 지난 뒤에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휘어진 것이다. 어린 딸은 오직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근본주의적 페미니스트라 해도 이 시의 정황이 자기 부모 일이라면 이렇게 전개되기를 바라지 않을까? 재밌는 시다. 바람을 들킨 현장에서 남편은 자기 체면을 구기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눈빛을 ‘내 편’일 아내에게 보냈을 것이다. 그 뒤 먼저 집에 돌아가 있느라 허둥지둥했을 아버지시여. 현모양처가 아니라 현처양모였던 시 속의 어머니, 고맙습니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