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낭송 노계현)

cassia 2012. 2. 27. 16:20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낭송 노계현)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낭송노계현)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시_ 윤동주 - 일제 말기를 대표하는 시인.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에 편입하고 교내 문예부에서 펴내는 잡지에 시 「공상」을 발표함. 「공상」은 그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활자화됨. 1936년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당하자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4학년에 편입했으며, 옌지[延吉]에서 발행하던 《가톨릭 소년》에 윤동주(尹童柱)라는 필명으로 동시를 발표.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자작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필시집 3부를 남김. 1942년 도쿄[東京]에 있는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학기를 마치고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편입.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45년 2월 16일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함. 유해는 용정의 동산교회 묘지에 묻혀 있음. 낭송_ 노계현 - 성우. 외화 <구름 속의 산책> <보통사람들> 등 다수 출연. 출전_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미래사)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정정화 프로듀서_ 김태형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를 배달하며 이 시가 쓰여진 때는 1942년. 이때 윤동주는 동경 릿쿄대학 영문과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성전 승리를 외치며 전쟁에 미쳐있을 때였지요. 식민지의 청년으로 식민 통치국의 심장부에서 공부하고 있던 청년 윤동주의 고뇌와 번민이 이 시에도 고스란합니다.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라는 유약해 보이는 문학청년의 언술은 뜻밖에도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라는 단호한 자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단호함은 일본식 다다미방인 육첩방에 자신의 몸과 정신을 길들이지 않겠다는, 스스로를 일깨우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할 겁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그가 스스로를 성찰할 때 그 성찰이 가닿은 저 아름다운 결구가 오늘 제 마음에 새롭게 사무칩니다. 그는 자신이 어둠을 ‘모두’ 내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금 내몰고’ 라고 쓰고 있지요. 힘 있는 큰 손을 내민다고 쓰지도 않습니다. ‘작은 손을 내밀어’ 라고 쓰고 있지요. 세계의 광포함에 비하면 자신의 힘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그는 알고 있습니다. 연약하지만 ‘조금’이나마 세계의 어둠을 벗겨내고자 안간힘 씁니다. 윤동주의 시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가 독립투사였기 때문이라기보다, 이처럼 여리고 연약한 개인이 끝끝내 지켜가려고 애쓴 자존의 품격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3월이 시작되면 학교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하겠네요. 오늘을 사는 청년들은 윤동주의 시대와는 다른 의미에서 역시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살인적인 학비에 시달리며 졸업과 함께 빚쟁이가 되어야 하는 대다수 평범한 청년들의 고뇌, 스스로 행복해지는 공부를 위한 터전이 아니라 대학입시학원, 취업입시학원이 된지 오래인 학교에 몸과 영혼을 구겨 넣어야 하는 청년들의 번민이 깊어가지만, 끝내 힘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씩’ 어둠을 내몰고, 스스로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부디 우리 최초의 악수를!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