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이진명,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낭송 임정선)

cassia 2012. 2. 20. 04:02
    이진명,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낭송 임정선) 이진명,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아내 박씨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 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는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아침신문이 턱하니 식탁에 뱉어버리고 싶은 지독한 죽음의 참상을 차렸다 나는 꼼짝없이 앉아 꾸역꾸역 그걸 씹어야 했다 씹다가 군소리도 싫어 썩어문드러질 숟가락 던지고 대단스러울 내일의 천국 내일의 어느날인가로 알아서 끌려갔다 알아서 끌려가 병자의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들어 추슬러놓고 늦은 밥술을 떴다 밥술을 뜨다 기도가 막히고 밥숟가락이 입에 물린 채 죽어가는데 그런 나를 눈물 머금고 바라만 보는 그 누가 거동 못하는 그 누가 아, 눈물 머금은 신(神)이 나를, 우리를 바라보신다 시_ 이진명 - 1955년 서울에서 풀생. 1990년 《작가세계》에 「저녁을 위하여」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단 한 사람』, 『세워진 사람』이 있음. 서정시학 작품상을 수상함. 낭송_ 임정선 - 배우. 연극 <리어왕>, <토란극>, 영화 <이웃집 좀비> 등에 출연. 출전_ 『세워진 사람』(창비)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이진명,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를 배달하며 이 시인은 고요합니다. 세상을 향해 큰소리로 외치지 않습니다. 다만 고요히 웁니다. 고요한데 지극히 치열합니다. 고요하게 살피고 돌봅니다. 시를 통해 일상의 결을 다시 매만지며 냉담해져가는 우리 마음에 더운 불을 지핍니다. 우리를 곧추세우게도 하고 무릎 꿇게도 하는 일상의 풍경들을 시로 옮기면서 번민하는 시인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조차 사라진 이 벌거벗겨진 황량한 도시에서 극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이렇게 날마다 사라져갑니다. 살아보려고 애쓰다 결국은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시인은 그들을 기억하고 곡비처럼 웁니다. 이 지극한 마음이 마지막으로 가 닿은 곳은 이런 비극에 무력한 신에 대한 애도. “아, 눈물 머금은 신(神)이 나를, 우리를 바라보신다”라고 써야하는 날들이 두렵습니다. 이제 긴 겨울의 막바지, 부디 모두 무사히 이 겨울을 나시길. 혹여 너무 참혹해진 이웃은 없는지 주위를 한번씩 돌아보았으면 싶습니다.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