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이기인, 「소녀의 꽃무늬 혁명」(낭송 남도형)

cassia 2012. 1. 9. 04:09
    이기인, 「소녀의 꽃무늬 혁명」(낭송 남도형) 이기인, 「소녀의 꽃무늬 혁명」  소녀는 꽃무늬 혁명을 떠야 한다고 했지요 왼편의 대바늘과 오른편의 대바늘 사이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붉은 실타래는 소녀의 혁명을 돕기도 했지요 아버지의 혁명은 아버지의 구식(舊式) 혁명으로 끝나버리고 한 코 한 코 풀어지면서 새로운 혁명을 끌어내야 한다고 털옷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장롱 속에서 나왔죠 낡은 털실은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 혁명가를 계속 불렀지요 그 옆에서 소녀의 꽃무늬 혁명은 계속 줄기를 뻗어나갔죠 풀어진 아버지의 혁명은 새 혁명의 넝쿨로 이어졌죠 소녀의 꽃무늬 혁명이 성공을 거둔다면 이 겨울도 이젠 춥지 않을 거라 믿었죠 붉은 실타래의 아우성이 무릎 위에 놓여 있다 차가운 책상 밑으로 또 기어들어갔죠 어두운 그곳에서 뭐해? 혁명을 꿈꾸는 실타래가 다시 뒹굴어 나오면서 실오라기 하나를 데리고 나왔죠 문득문득 소녀의 혁명이 모자라지 않나, 소 눈동자만해진 털실을 바라보며 불안했죠 어서어서 꽃무늬 혁명을 하나 떠서, 추위에 떠는 당신께 가야 한다고 말했죠 시_ 이기인 - 1967년 인천 출생.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가 있음. 낭송_ 남도형 - 성우. SBS [내 친구 해치], KBS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에 출연. 출전_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창비) 이기인, 「소녀의 꽃무늬 혁명」을 배달하며 ‘혁명’이라는 말을 꽁꽁 언 감옥에서 풀어주고 싶어요. 말의 혁명, 사랑의 혁명, 시선의 혁명을 쟁취하고 싶어요. 따스한 온기를 누릴 권리가 있는 삶에게 함부로 잊힌 권리장전을 낭랑한 목소리로 다시 읽어주고 싶어요. 일상의 모든 순간에 혁명의 열정과 발랄한 빛의 슬로건을 선물하고 싶어요. 정치혁명은 혁명의 시작일 뿐이거나 우리 삶을 이루는 삼각형의 한 꼭짓점 근처일 뿐, 두 개의 꼭짓점은 나와 당신에 의해 궁극적인 축배를 맞이할 거예요. 스스로를 구원하는 진짜 혁명에 대해 묻는, 그 모든 소소한 순간들에 대해 생각해요. 너무 큰 대의에 대해 당신이 열변을 토하시면 나는 추위에 떠는 당신에게 따뜻한 목도리를 짜 둘러주고 싶은 그저 자그마한 촛불 한 자루 같은 내 혁명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요. 이 소박한 아름다운 시를 받는 그대여, 사랑하는 이를 따뜻이 돌보고 싶은 그 마음이 실은 혁명의 시작이자 끝 아니겠어요. 이런 젠장,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오직 자기 잇속만 생각하는 자들이 대의니 쇄신이니 개혁이니 자꾸 떠들어대니 말들이 자꾸 타락하잖아요.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