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이성부, 「벼」(낭송 주하림)

cassia 2011. 10. 3. 06:24
    이성부, 「벼」(낭송 주하림) 이성부, 「벼」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시_ 이성부 - 1942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1962년 《현대문학》에 「백주」, 「열차」가 추천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이성부 시집』, 『우리들의 양식』, 『백제행』, 『전야』, 『빈 산 뒤에 두고』, 『야간 산행』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함.  낭송_ 주하림 - 시인. 1986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으며, 2009년 제9회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출전_ 『우리들의 양식』(민음사) 이성부, 「벼」를 배달하며 쌀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벼가 자라는 논을 실제로 본 적 없는 아이들이라면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는 시행이 상상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쿠, 이런! 혹시라도 매일 먹는 밥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아이가 있다면, 시험공부보다 먼저 우리의 논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밥이 어디서 오는가. 이것을 헤아리는 일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 일이고 삶의 근원을 튼튼하게 하는 일이니까요. 먹는 일을 살피는 일은 생명을 살피는 일이지요. 무심하게 먹는 밥 한 그릇이 오랜 시간, 정성, 자기희생을 거쳐서야 비로소 우리의 밥상에 올라온다는 것을 이 시는 그윽한 뒷면으로 보여줍니다. 이 시는 7,80년대 민중시의 전통 속에서 자주 이야기 됩니다. 그만큼 우직하고 고전적인데도 고답하지 않습니다. 단정하면서도 어딘지 활달한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시적 대상에 투사하는 시적화자의 애정과 신뢰로부터 오는 것 같습니다. 그 애정과 신뢰로 인해 ‘벼의 생애’는 우리 인생의 단면으로 자연스럽게 옮아옵니다. ‘벼가 기대어 산다’, 라고 할 때 그렇지, 우리도 기대어 살지! 싶어지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라고 쓸 때 그렇지, 인생이 통상 그러하지! 생각하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를 읽는데 눈시울이 시큰합니다. 지난 여름도 참으로 더웠습니다. 그 더위 속에서 서로의 몸을 묶어 ‘함께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증언해준 사람들이 있었지요.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에 대해 묵상합니다. 그 진하디 진한 그리움에 대하여.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