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낭송 김세동)

cassia 2011. 10. 17. 03:46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낭송 김세동)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이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에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하여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시_ 김수영 -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50년 북한군에게 끌려갔다가 탈출해 거제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952년 석방됨. 박인환 등과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펴냈고, 시집 『달나라의 장난』, 시선집 『거대한 뿌리』, 『사랑의 변주곡』, 『김수영 전집』,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등이 있음. 낭송_ 김세동 - 배우. <밑바닥에서> 등 출연. 출전_ 『김수영 전집』(민음사)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배달하며 항상 절정 위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나의 일상이 정면에서 너무 비껴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이닥칠 때 이 시를 읽습니다. 김수영 시인이 살아있다면, 첫 연의 4행을 조금 고쳐달라고 청하고 싶지만 (“설렁탕집 주인에게 욕을 하고” 정도로 말이죠), 그는 이미 없으니 어쩔 수 없네요. 첫 연의 4행이 마음에 몹시 걸리지만 그래도 이 시의 놀라운 정직함을 좋아합니다. 후대의 시인으로서 김수영 시인에게서 배운 가장 큰 것이라면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삶에 대해 가져야할 정직함과 번민의 자세입니다. 이 시는 1960년 4.19혁명 이후 들이닥친 1961년 5.16 군사쿠테타, 그 반혁명의 시절을 살아내는 소시민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회초리를 들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시인으로서의 김수영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자유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갈망과 일상에 대한 냉혹한 반성이 만날 때입니다. 그리하여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사랑의 변주곡」 첫 부분)고 열기 어린 사랑의 지향을 노래할 때입니다. 60년대의 김수영이 거론하는 ‘비겁’의 목록을 2010년대의 ‘비겁’의 목록으로 바꾸어 읽어봅니다. 떠오르는 많은 괄호들이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아,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이 탄식이 하릴없는 자조로 침몰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씩씩해져야겠습니다. 오, 자유! 오, 사랑!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