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심아진,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중에서(낭송 홍서준, 윤미애)

cassia 2011. 9. 29. 06:45
    심아진,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중에서(낭송 홍서준, 윤미애) 심아진,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중에서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아침도 굶은 내 뱃속은 인내심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아귀가 텅 빈 위장을 뚫고 나와 닥치는 대로 다른 내장들까지 갉아먹고 있기라도 한 듯 속이 쓰라리다. 그 허기를 달래줄 만한 신문도 다른 사람이 가져간 지 오래고, 찻잔도 물잔도 홀랑 비어 있다. 게다가 세 번씩이나 커피를 더 달랄 수는 없는 노릇인 데다 커피가 쓰라린 위에 결코 도움을 줄 성싶지도 않다. 지금쯤이면 다시 연락을 해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지난여름 해변에서 떨어뜨린 이래로 폴더를 밀 때마다 끽끽 모래알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휴대폰을 열어 저장된 번호를 누른다. 명세학원. 오래 신호음이 가고서야 비염기 많은 여인의 음성이 전화를 받았다. “원장님 지금 볼일이 있으셔서 잠깐 자리 비우셨는데요. 실례지만 누구라고 전해드릴까요?” 하지만 나는 그녀가 이번에 그만두게 될 당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인사한 후 서둘러 폴더를 닫는다. 자리를 비웠으니 이리로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현듯 긴장이 된다. 빈 잔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설탕이 들었던 종이 껍질은 바람개비 모양으로 단정하게 접어 찻잔 받침 위에 올려두었다. 시계는 이제 막 두 시를 가리킨다. 담배라도 피울 줄 알았더라면…… 나는 작고 동그란 재떨이를 빙그르르 한번 돌려보았다. 스그르르 탁! 하마터면 떨어질 뻔 했다. 테이블 판유리 아래의 글귀에 다시금 눈길이 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산이 날 바람같이 살아라 한다? 나는, 추가로 차를 주문해서 살도 안 되는 물값으로 돈을 허비하거나, 또는 너무 지루해서 화난 인상을 첫인상으로 보이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무엇보다 이 비참할 정도의 허기를 개끗이 잊어버리기 위해서, 바람을 명상하기로 한다.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착 붙이고, 언젠가 TV에서 본 기 수련하는 사람들처럼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배꼽 근처에 댄 뒤 심호흡을 크게 했다. 산이고 바람이라…… 산의 기운, 바람의 냄새, 산의 부름, 바람의 자유스러움, 산이 있는 곳, 바람이 가는 곳…… 작가_ 심아진 - 1972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으며, 1999년 《21세기문학》에 단편소설 「차 마시는 시간을 위하여」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2004년부터 2009년까지 헝가리에 살면서 부다페스트 파인아트뮤지엄 도슨트로 활동 중. 낭독_ 홍서준 - 배우. 뮤지컬 〈우리 동네〉, 〈위대한 캐츠비〉 등에 출연.              윤미애 - 배우. 〈12월 이야기〉, 〈늦게 배운 피아노〉 등 출연. 출전 : 『숨을 쉬다』← 클릭(홍영사) 심아진,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를 배달하며 이 글의 주인공은 학교 졸업 후 반 백수 생활 3년 만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학원 선생을 해보려는 남자입니다. 학원 원장과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일찍 약속 장소에 나가 앉아 면접을 준비합니다. 열 시 지나 좀 늦겠다는 전화를 해온 원장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허기가 지지만 살도 안 되는 차에 돈을 허비하기도 싫고, 우연히 눈이 간 것이 탁자 위의 글귀입니다. ‘산이 날 바람같이 살아라 한다’. 그는 오지 않는 원장을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아침 아홉 시 반에 만나기로 한 원장은 저녁 여섯 시가 다 되어서야 나타나지요. 방학 동안 뒹굴대는 큰아이에게 지청구를 주었더니 한 마디가 돌아왔습니다. “열심해 해봤자 88만원세대가 될 텐데 뭘.” 그러고보니 그 아이가 뛰어들게 될 머지 않은 미래의 사회도 별반 달라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아이에게 바람처럼 살라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문학집배원 하성란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