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고정희, 「히브리전서(傳書)」(낭송 황혜영)

cassia 2011. 7. 18. 04:06
    고정희, 「히브리전서(傳書)」(낭송 황혜영) 고정희, 「히브리전서(傳書)」   한 사나이가 언덕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한 사나이가 언덕을 오르고 한 사나이의 이마에 두 줄기 핏방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 사나이가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오르고 오르고 오르다 쓰러지고 맨살의 등줄기에 매섭고 긴 채찍이 수없이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사나이는 쓰러지고 불볕 같은 햇빛 아래 사내는 지쳐 쓰러지고 갈릴리 해변은 한없이 적막한 바람에 뒤덮이고 아, 한 사내가 골고다 언덕에 다시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목말라 비틀거리는 사내는 자기 키보다 더 큰 나무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골고다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마리아, 그녀의 한(恨)에 절은 눈물과 가슴을 외면한 채 주검보다 무거운 고독에 짓눌린 마리아 그녀의 폭탄 같은 오열을 외면한 채 사나이는 먼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사내는 대학을 다닌 적도 없습니다. 부귀를 누린 자도 아닙니다. 권력을 가진 적도 없습니다. 그럴싸한 명사를 만난 적도 없습니다. 가난한 거리와 버림받은 이웃과 냄새나는 유대의 거리 그 천한 백성들의 눈물과 한숨이 있었을 뿐입니다. 율법에 두 발 묶인 죄의 사슬로부터 무섭도록 외로운 삶의 멍에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뿐인 불쌍한 무리들, 동정받을 일밖에 없는 히브리의 단 하나 친구인 그리스도는 가진 것 없는 당신 주제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줘야만 했습니다. 처음엔 기적을, 그 다음엔 정신을 그 다음엔 영혼을, 그 다음엔 전 생애와 주검까지도 죄 많은 유대에게 넘겨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부활까지라도 그 찢어지게 가난한 히브리에게 무더기로 넘겨준 사내, 멋진 사내 예수. 그는 공부를 많이 한 적도 없습니다. 세도의 가문은 더욱 아니고 오직 별 볼일 없는 갈릴리 어촌의 목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세상 죄 다 짊어지고 피 한 방울 남김없이 다 쏟아버린 그 사내가 성금요일 오후 세시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성당의 휘장이 갈라지고, 그를 본 영혼들은 한꺼번에 쩍, 금이 가고 있었습니다.   시_ 고정희 - 1948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으며, 1975년 《현대시학》에 시가 추천되어 작품활동 시작. 교수, 잡지사 기자 등을 거쳐 《또 하나의 문화》 창간 동인,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역임했으며, '목요시' 동인으로 오월 시인으로 활동함. 시집으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실락원 기행』, 『초혼제』, 『이 시대의 아벨』, 『눈물꽃』, 『지리산의 봄』,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광주의 눈물비』, 『여성 해방 출사표』, 『아름다운 사람 하나』 등이 있음. 1991년 6월 지리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타계함. 낭송_ 황혜영 - 배우. 연극 <타이피스트>, <죽기살기> 등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하모니> 등에 출연. 출전_ 『이 時代의 아벨』(문학과지성사) 고정희, 「히브리전서(傳書)」를 배달하며 고정희, 그녀는 저의 왼쪽 가슴을 이루는 제가 사랑한 많은 여자들 중 큰언니 뻘에 해당합니다. 그녀의 이름을 가만히 다시 부르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옵니다. 당당한 전사이자 가장 섬세한 여자인 그녀를 사랑했어요. 1983년에 초판이 나온 시집에 들어있는 이 시를 30년 후에 읽으면서 마음이 서늘합니다. 예수는 대학에 다니지 않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좋은 대학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밤낮없이 그에게 기도를 계속하고 있지요. 예수는 부귀를 누리지 않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부귀를 누리게 해달라고 이 순간에도 그에게 매달려 부르짖기를 계속하고 있지요. 예수가 전한 사랑은 어디에 있는지. 오늘날 예수는 정말 누구인지.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못 박힌 예수는 온 데 간 데 없고 세상에서 온갖 부귀영화 누리는 예수가 판치는 이 시절, 사라져버린 참된 교회들을 찾으며, 여전히 울고 있을 고정희가 사무칩니다. 그립고 아픕니다.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