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신용목, 「아파트인」(낭송 박경근)

cassia 2011. 7. 25. 03:45
    고정희, 「히브리전서(傳書)」(낭송 황혜영) 신용목, 「아파트인」 천 년 뒤에 이곳은 성지가 될 것이다 아파트 이 장엄한 유적에 눕기 위해 고된 노동과 아픈 멸시를 견뎠노라고 어느 후손은 수위실 앞에서 안내판을 읽을 것이다 관광 책자에 찍혀 있을 나의 유골을 구겨 쥐고 관리비 내러 갔던 관리소 종교인들이 층층이 잠들었다는 로마의 카타콤 성스럽게 북벽을 차지하고 걸린 사진처럼 하루는 아침 변기에 앉아 몇 미터 높이와 몇 미터 간격으로 차곡차곡 손을 늘어뜨리고 볼일을 보고 있을 아파트 주민들을 생각했다 박해의 축복처럼 뿌려지는 태양 가루 돌의 사막을 나서는 숫낙타의 갈라진 발톱과 마른 혓바닥을 닮은 여인의 얼굴 모래알을 씹는 아이들이 몸마다 칸칸이 멸망을 분양하고 사는 카타콤에 밤이 온다 구름과 구름 사이에 만찬이 차려지고 간곡함을 거룩함으로 옮겨놓는 시간의 낱장들이 창문마다 아름답게 내걸린다 이대로 한 시대가 끝난다면 나는 순교자가 될 것이다 시_ 신용목 - 1974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가 있음. 낭송_ 박경근 - 배우.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천년제국>, <삼월의 눈> 등에 출연. 출전_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문학과지성사) 신용목, 「아파트인」을 배달하며 “아파트인”― 이렇게 명명하고 보니 비애가 와락 달려드는 말의 마술. 그렇지요. 전국 방방곡곡 처처에 가득한 아파트 단지들을 보며 저도 같은 상념에 잠깁니다. 전국의 산야를 밀어내며 들어서는 아파트와 아스팔트의 밀림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유적이 될는지 모르죠. 그때 미래인들은 이 아파트 유적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앙코르와트는 아름다운 조각상들을 남기고 마야, 잉카의 유적들은 정교한 건축의 미스터리를 남겼지만 심미적 진화를 전혀 이루지 못한 직사각형 콘크리트 더미들을 발견한 미래인은 갸우뚱할지도 모릅니다. 이 시대가 끝나고 아파트인이 되기 위해 받았던 온갖 멸시와 고된 노동이 역사에 기록되는 것을 상상해봅니다. 죽어서도 시멘트 냄새가 나는 불가사의한 아파트인으로 기록될 불우에 대해서도. 다음 세대에 아파트 입주권을 남기고 순교한 성자에 대해서도.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