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장정일,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낭송 김산)

cassia 2011. 6. 27. 13:11
    장정일,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낭송 김산) 장정일,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 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서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시_ 장정일 - 1962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났으며, 1984년 무크 《언어의 세계》 3집에 「강정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햄버거에 대한 명상』, 『길안에서의 택시잡기』 등이 있으며, 희곡집 『긴 여행』, 『고르비 전당포』, 소설 『아담이 눈뜰 때』,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보트하우스』, 『구월의 이틀』 등이 있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함. 낭송_ 김산 - 197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2007년 《시인세계》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출전_ 『햄버거에 대한 명상』(민음사) 장정일,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을 배달하며 스물두 살 청년이 화자인 이 시엔 생의 힘겨움과 비애를 일찍 알아버린 소년시인의 애잔한 순수가 가득합니다. 지금은 지천명에 이른 한 작가의 글쓰기 가장 밑바닥 내밀한 곳을 보여주는 시지요. 세상의 모든 소외된 곳들에서 외롭게 칼잠 자는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을 쉬게 하고픈 선함의 파동이 뭉클합니다. 그럴 때 생은 신비합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지구상에 살아서 그래도 퍽 괜찮을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은 이런 서정, 이렇듯 존재의 안쓰러움에 민감한 마음의 무늬 때문일 겁니다. 이것은 이를테면 우정의 마음.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삶에 지친 존재들을 위로하고픈 소년마리아의 노래. 이런 위로가 세상 한편에 있는 한 우리는 아직 눈물 흘려도 좋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사철나무 한그루 되어주고 싶습니다. 친구여, 길 가는 그대에게 사철나무의 꿈까지 들려주고 싶습니다. 문학집배원 김선우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