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박형권, 「우리 동네 집들」(낭송 장인호)

cassia 2010. 8. 23. 07:13
    박형권, 「우리 동네 집들」(낭송 장인호) 우리 동네 집들 / 박 형 권 좋은 사이들이 말을 할 때 가만히 눈매를 바라보는 것처럼 손끝으로 입을 가리는 것처럼 겨드랑이를 쿡 찌르고 깔깔대는 것처럼 우리 동네 집들이 말을 한다 파란 대문 집은 아직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외등을 켜고 군불 때는 집은 쇠죽 끓이는 소리로 오래된 말을 한다 옥상에 노란 수조가 있는 집은 취직시험 볼 삼촌이 있어서 옥탑방이 하얗게 말을 한다.. 오랫동안 살을 맞댄 이웃집들은 오래된 부부처럼 닮아간다 된장 맛이 같아지고 김치 맛이 같아지다가 우리 담장 허물까 한다 그러다가 한방 쓸까 한다 돌아설 수밖에 없는 어려운 처지에서는 등으로 말을 한다 뒤란으로 말을 한다 거기 목련 한 그루 심어둔다 골목 하나 사이에 두고 마주한 집들은 활짝 열린 입술로 키스 할까 말까 오랫동안 망설인다 문을 열고 사람이 나와 골목을 쓸면서 잘 잤어? 하는 것은 사람이 집의 혀이기 때문이다 집들이 하는 말 중에 가장 달콤하게 들리는 것은 우리 불 끌까? 이다 밤에 집이 하는 말을 들으려고 옥상에서 귀를 귀울이면 응, 거기 거기 하는데 우리 동네 밤하늘이, 반짝반짝 별들이 그런 밤에는 불끈불끈 자란다 우리 동네 집들은 다른 동네 집들보다 조금 크게 말을 한다 바다에서는 목청껏 말해도 파도소리를 넘을 수 있기에 그런 어부 새벽마다 낳아야 하기에 배에 힘 가두고 출렁이듯 말을 한다 출전 / 『우두커니』(실천문학사) 박형권의 「우리 동네 집들」을 배달하며 이 천진스러운 시를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어려지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린이의 말을 잃지 않은 사람, 굳어져 딱딱한 고정관념이 없이 말랑말랑한 새 말을 쓰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을 우리는 시인이라 부릅니다. 그 어린 눈에라야 삐뚤삐뚤하게 어깨를 맞댄 집들과 그 집안에 사는 순하고 어수룩한 사람들이 한 몸이라는 게 보일 것입니다. 그 어린 귀에라야 집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연인 사이처럼, 엄마와 아기 사이처럼, 사람과 집 ‘사이’에 서로 꼭 붙어 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말들이 손으로 만져질 듯합니다. 이 말들을 우리는 시라고 부릅니다. / 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