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김경주「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낭송 김경주)

cassia 2010. 7. 19. 07:16
    김경주. 「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낭송 김경주) 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 김경주 불을 끄고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 창문을 잠시 두드리고 가는 것이었다 이 밤에 불빛이 없는 창문을 두드리게 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아직 떠난 것이 아닌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문득 내가 아닌 누군가 방에 오래 누워 있다가 간 느낌. 이웃이거니 생각하고 가만히 그냥 누워 있었는데 조금 후 창문을 두드리던 소리의 주인은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들을 두드리다가 제 소리를 거두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곳이 처음이 아닌 듯한 느낌 또한 쓸쓸한 것이어서 짐을 들이고 정리하면서 바닥에서 발견한 새까만 손톱 발톱 조각들을 한참 만지작거리곤 하였다 언젠가 나도 저런 모습으로 내가 살던 시간 앞에 와서 꿈처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를 어룽어룽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이 방 창문에서 날린 풍선 하나가 아직도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어떤 방(房)을 떠나기 전, 언젠가 벽에 써놓고 떠난 자욱한 문장 하나 내 눈의 지하에 붉은 열을 내려 보내는 밤, 나도 유령처럼 오래전 나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 출전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 김경주의 「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을 배달하며 김경주 시인은 허공과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바람의 고고학자 같습니다. 그는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에서 우리가 모르는 시간, 이름붙일 수 없는 시간을 살다 간 이들을 봅니다. 바람 속에서 "내가 아닌 누군가"를 발견하고 친근감을 느낍니다. 그때 시인은 지금 이 삶이 "처음이 아닌 듯한 느낌"을 받고, 창문을 두드리고 간 보이지 않는 이들과 오래 전에 함께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을 떠올립니다. 자기도 바람이 되어 미래의 어느 날 이 방에 찾아와 문을 두드릴 것 같은 예감을 갖습니다. 다른 시에서는 "바람은 살아있는 화석"이며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뒤에도 스스로 살아남아서 떠돈다“고도 썼습니다. / 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