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사랑했네
이정하
사랑을 얻고 나는 오래도록 슬펐다. 사랑을 얻는다는 건 너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아니었으므로. 너를 체념하고 보내는 것이었으므로.
너를 얻어도, 혹은 너를 잃어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 같은 것. 아아 나는 당신이 떠나는 길을 막지 못했네. 미치도록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 슬픔에 빠져 나는 세상 다 살았네. 세상살이 이제 그만 접고 싶었네
한 사람을 사랑했네 1
이정하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내 길보다 자꾸만 다른 길을 기웃거리고 있었네.
함께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내 인생 전체를 삼키고도 남게 했던 사람. 만났던 날보다 더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던 사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함께 죽어도 좋다 생각한 사람. 세상의 환희와 종말을 동시에 예감케 했던 한 사람을 사랑했네.
부르면 슬픔으로 다가올 이름. 내게 가장 큰 희망이었다가 가장 큰 아픔으로 저무는 사람.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기에 붙잡지도 못했고 붙잡지 못했기에 보낼 수도 없던 사람. 이미 끝났다 생각하면서도 길을 가다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은 사람.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면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한 사람을 사랑했네.
떠난 이후에는 차마 지울 수 없는 이름. 다 지웠다 하면서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눈빛. 내 죽기 전에는 결코 잊지 못할 한 사람을 사랑했네. 그 흔한 약속도 없이 헤어졌지만 아직도 내 안에 남아 뜨거운 노래로 불려지고 있는 사람. 이 땅 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사랑했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당신을 사랑했네.
한 사람을 사랑했네 2
이정하
한번 떠난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네. 강물이 흐르고 있지만 내 발목을 적시던 그때의 물이 아니듯, 바람이 줄곧 불고 있지만 내 옷깃을 스치던 그때의 바람이 아니듯 한번 떠난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네.
네가 내 앞에 서 있지만 그때의 너는 이미 아니다.
내 가슴을 적시던 너는 없다. 네가 보는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다. 그때의 너와 난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한번 떠난 것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아,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그 부질없음이여.
한 사람을 사랑했네 3
이정하
오늘 또 그의 집 앞을 서성거리고 말았다. 나는 그를 잊었는데
내 발걸음은..., 그를 잊지 않았나 보다.
한 사람을 사랑했네 4
이정하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할 때 당신은 또 내게 오십니다.
한동안 힘들고 외로워도 더 이상 찾지 않으리라, 할 때 당신은 또 이미 저만치 오십니다.
어쩌란 말입니까 그대여, 잊고자 할 때 그대는 내게 더 가득 쌓이는 것을
그대 깊숙이 내 안에 있어 이제는 꺼낼 수도 없는 그대를.
시인 이정하는 1962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륜중학교, 대건고등학교를 거쳐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원광대학교 국문과에 재학중이던
1987년 <경남신문>,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온 이후
『우리 사랑은 왜 먼 산이 되어 눈물만 글썽이게 하는가』,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등의
시집과 산문집 『우리 사는 동안에』, 『소망은 내 지친 등을 떠미네』,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
『아직도 기다림이 남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등을 펴냈죠. 고교시절부터
각종 문예 콩쿠르에 입상하는 등 문학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고 합니다. 이정하 시인 이메일 : ha3725@shinbiro.com
시 집
『 우리 사랑은 왜 먼 산이 되어 눈물만 글썽이게 하는가 - 1991 』 『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 1994 』 『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1997 』 『 당신이 그리운 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 1999 』 『 한 사람을 사랑했네 - 2000 』 『 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 - 2001 』 『 혼자 사랑한다는 것은 - 2002 』
산 문 집
『 우리 사는 동안에 - 1992 』 『 소망은 내 지친 등을 떠미네 - 1993 』 『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 1996 』 『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 - 1997 』 『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1 - 1998 』 『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2 - 1999 』 『 아직도 기다림이 남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 1999 』 『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 -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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