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한 사람을 사랑했네

cassia 2010. 7. 12. 11:00

 

 

 

 

 

 

한 사람을 사랑했네

 

이정하


사랑을 얻고 나는 오래도록 슬펐다.
사랑을 얻는다는 건
너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아니었으므로.
너를 체념하고 보내는 것이었으므로.

너를 얻어도, 혹은 너를 잃어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 같은 것.
아아 나는 당신이 떠나는 길을 막지 못했네.
미치도록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 슬픔에 빠져 나는 세상 다 살았네.
세상살이 이제 그만 접고 싶었네

 

 

 

 

한 사람을 사랑했네 1

 

이정하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내 길보다
자꾸만 다른 길을 기웃거리고 있었네.

함께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내 인생 전체를 삼키고도 남게 했던 사람.
만났던 날보다 더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던 사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함께 죽어도 좋다 생각한 사람.
세상의 환희와 종말을 동시에 예감케 했던
한 사람을 사랑했네.

부르면 슬픔으로 다가올 이름.
내게 가장 큰 희망이었다가
가장 큰 아픔으로 저무는 사람.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기에 붙잡지도 못했고
붙잡지 못했기에 보낼 수도 없던 사람.
이미 끝났다 생각하면서도
길을 가다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은 사람.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면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한 사람을 사랑했네.

떠난 이후에는 차마 지울 수 없는 이름.
다 지웠다 하면서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눈빛.
내 죽기 전에는 결코 잊지 못할
한 사람을 사랑했네.
그 흔한 약속도 없이 헤어졌지만
아직도 내 안에 남아
뜨거운 노래로 불려지고 있는 사람.
이 땅 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사랑했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당신을 사랑했네.

 

 

 

 

한 사람을 사랑했네 2 

 

이정하


한번 떠난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네.
강물이 흐르고 있지만 내 발목을 적시던
그때의 물이 아니듯, 바람이 줄곧 불고 있지만
내 옷깃을 스치던 그때의 바람이 아니듯
한번 떠난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네.

네가 내 앞에 서 있지만
그때의 너는 이미 아니다.

내 가슴을 적시던 너는 없다.
네가 보는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다.
그때의 너와 난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한번 떠난 것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아,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그 부질없음이여.

 

 

 

 

한 사람을 사랑했네 3 

 

이정하


오늘 또 그의 집 앞을 서성거리고 말았다.
나는 그를 잊었는데

내 발걸음은..., 그를 잊지 않았나 보다.

 

 

 

 

 

한 사람을 사랑했네 4 

 

이정하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할 때
당신은 또 내게 오십니다.

한동안 힘들고 외로워도
더 이상 찾지 않으리라, 할 때
당신은 또 이미 저만치 오십니다.

어쩌란 말입니까 그대여,
잊고자 할 때
그대는 내게 더 가득 쌓이는 것을

그대 깊숙이 내 안에 있어
이제는 꺼낼 수도 없는 그대를.

 

 

 

시인 이정하는 1962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륜중학교, 대건고등학교를 거쳐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원광대학교 국문과에 재학중이던

1987년 <경남신문>,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온 이후

『우리 사랑은 왜 먼 산이 되어 눈물만 글썽이게 하는가』,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등의

 시집과 산문집 『우리 사는 동안에』, 『소망은 내 지친 등을 떠미네』,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

『아직도 기다림이 남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등을 펴냈죠. 고교시절부터

각종 문예 콩쿠르에 입상하는 등 문학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고 합니다.
이정하 시인 이메일 : ha3725@shinbiro.com

시 집

『 우리 사랑은 왜 먼 산이 되어 눈물만 글썽이게 하는가 - 1991 』
『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 1994 』
『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1997 』
『 당신이 그리운 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 1999 』
『 한 사람을 사랑했네 - 2000 』
『 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 - 2001 』
『 혼자 사랑한다는 것은 - 2002 』

산 문 집

『 우리 사는 동안에 - 1992 』
『 소망은 내 지친 등을 떠미네 - 1993 』
『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 1996 』
『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 - 1997 』
『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1 - 1998 』
『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2 - 1999 』
『 아직도 기다림이 남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 1999 』
『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 -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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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 (Allegro)
Haskil, Piano / Grumiaux, Vio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