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홰

월남이상재선생과 남바우

cassia 2006. 11. 12. 07:21

날씨가 추워지니 어릴 적 

어르신들께서 많이 쓰시던 남바우 생각이 났습니다..

'남바우'하면 떠오르는 어르신 한 분이 계십니다..월남이상재선생.

 

               

 글이 좀? 길어서 음악부터..^^*

 

남바우의 이미지를 찾아보니 이런 그림이 설명과 함께 보이네요...^^*

 

남바위를 쓴 낚시꾼이 책상다리를 하고 있고, 옆에 솜옷을 입은 구경꾼이 쭈그려 앉아 있다. 원 자료에 사진 제목이 ‘겨울낚시’로 되어 있고, “주로 붕어나 잉어를 많이 잡았다. 그 재미에 한겨울의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앉아 버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모양.”이라는 해설이 있다. 낚시꾼은 남바우를 쓰고 있다. 구경꾼이 쓰고 있는 모자는 상제가 쓰는 굴건으로 보인다. 상제가 얼음판을 지나다 낚시를 구경하는 것인지. (서문당,「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생활과 풍속」, 99쪽, 1987)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도덕책에서 

월남 이상재 선생에 대하여 배울 때 이 남바우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생은 겨울이면 갓위에 남마우를 즐겨 쓰셨나 봅니다..

늘 졸졸 따라 댕기던 일경이

"선생은 왜 갓위에 남바우를 쓰십니까?"

지금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일경은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월남 선생과 가까이 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월남선생은 일본이라면 지지긋하셨겠지요..

"이늠아야,

그라마 남바우우(위)에 갓 쓰까?"....

책에는 이런 말이 아니었겠지요...나이 지긋하신데다

애국충정이 남다르셨던 담임선생님의 이야기가 

교과서 내용보다 더 선명하게 떠오르기에,...들은 기억대로 옮긴 겁니다..^^*  

 

 

내친 김에 월남이상재선생의 일화를 더 찾아 보았습니다..^^*

 

 

월남 이싱재선생은 1850년 충남 서천군에서 태어나
박정양 주미공사의 2등서기관으로 부임하여 일찌기 서양문물을 접하였고,
서재필,윤치호등과 독립신문을 개간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조선일보 사장도
역임하였다.3.1운동등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하든중 옥고를 치르면서
옥중에서 기독교를 접하여 YMCA 총무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살아계실 동안 수 많은 일화를 남기신 분으로,
옛날 선생의 전기에서 읽은 것들과 인터넷에 올린 것을 추려서 엮어 보았습니다.
요즈음 삭막한 정치 현실과 정치인들이 내 뱉는 몰상식하고 추한 행동과
말들 때문에 더욱 선생의 재치있는 얘기들이 그리워집니다.

 
월남 선생의 가장 절친한 친구의 자제가 종로 화신 앞을 걸어가고
있는데,갑짜기 뒤에서
자기 어버님을 욕하는 큰 소리가 들린다
"OO 새끼~~"
놀라서 뒤돌아보니 월남 선생이다.
아들되는 자가 선생 앞으로 가서,왜 자기 아버지를 백주대로에서
욕을 하느냐고 항의를 하니
"이 놈아! 네가 OO 새끼 아니냐? 반가워서 널 부른 건데 뭐 잘못되었나?"


충남 서천군 한산면의 선생의 생가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니 종로서의 담당형사가 오랫동안 선생이
두문 불출하니,혹시 독립운동 할려고 만주나 몰래 간 것인지 와병중인지
알길이 없어 선생의 자택을 방문하였다.
실은 선생이 와병중인것을 확인하고 일어 설려고 하니
선생이 갑짜기 일본 형사의 소매자락을 끌어 댕기며
"이 놈아! 가긴 어딜가! 네가 살아 생전 매일 날 줄줄 따라
다녔으니,지금 내가 저승가는데 네놈도 같이 가야지?"
 
 
월남이상재 선생님에게 일본의 신문기자 나카무라가 물었습니다.
" 선생님 간디는 100살까지 산다는데 선생님은 몇살까지 살 작정이십니까?"
선생님은 일본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 사람이 한번 낫으면 영원히 살지 죽긴 왜 죽어 "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선생이 일본시찰단원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逸話(일화)이다. 시장 주최 晩餐(만찬)에서 시찰 所感(소감)을 묻자,
“오늘 東洋(동양)에서 제일 큰 도쿄 병기창을 보니 과연 일본이 동양의
강국임을 확인하였소. 그런데 聖經(성경)말씀에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
고 하였으니, 그것이 걱정이외다.”라고 말했다.
당연히 同席(동석)했던 일본인들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이상재 선생이 이완용을 보고 말했다
"대감은 도쿄로 이사가는게 어떻겠소?"  이완용 "왜그렇습니까?"
이상재 선생 "대감은 나라 망하게 하는덴 천재니 도쿄로 이사가면
곧 일본도 망하지않겠소?"

 
하루는 서양선교사가 비누를 잔뜩 가져와서 조정중신에게 나눠줄때.
“뭐에 쓰는 물건인고?” 라는 질문을 던진 월남은 얼굴을 깨끗하게 해준다는
주위 사람의 대답을 듣고 단숨에 비누를 삼킨 것.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내 속은 얼굴보다 더 지저분하니 마음을 깨끗이
해야겠다”하여 선교사 뿐 아니라 조정중신들을 놀라게 하였다.


어느날 선생께서 강연 하는데 일본 순사랑 형사들이 뒤에 들어와
감시하니까 뒷산을 보면서 '개나리가 만발하였군!'하셨다죠.
참고로 당시 순사의 별칭은 '개'  형사는 '나리'였습니다..
 

월남 선생이 어느 날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맞은 편 자리에 있던 일본 형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죠센시끼데 하나오 간데야로!
(朝鮮式で はなをかんでやろう! 조선 식으로 코를 풀어 보자!)
하더니 집게손가락으로 콧구멍 하나를 막고 이쪽 저쪽으로 팽팽 하고
코를 푸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듣고 화가 나신 월남 선생이
우리말로 "나는 일본식으로 코를 풀어주겠다." 하시며 역시
집게손가락으로 콧구멍 하나를 막고 팽 하고 코를 풀었다.
그러자 우리말을 알아듣는 그 일본 놈이 화가 나서
'그게 어째서 일본식이냐'고 따졌다.
그러자 월남 선생 가라사대 "야, 무식한 일본 놈아,
손가락 한 개면 일본(一本) 아니냐.
그러니까 손가락 한 개로 코를 푸는 건
'조선식'이 아니라 '일본식(一本式)'이다." 하시니까
많은 사람들이 박장 대소를 하고 왜놈은 말이 막혔다는 것이다.

그런데 월남 선생은 이번에는 일본말로
"곤도와 니혼시끼데 하나오 간데야루조
(今度は日本式ではなをかんでやるぞ! 이번에는 일본식으로 코를 풀어주마.)
"하시더니, 두 손가락으로 코를 쥐고는 팽팽 하고
시원하게 코를 푸셨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왜놈은 이번에도
'그게 어째서 [니혼시끼(일본식)]이냐'고 따지고
대들었다는 것이다.월남 선생은 손가락 두 개를 보이며 가라사대
"고레 니혼쟈 나이까, (これ,二本じゃないか? 이거 두 가락 아냐?)"

그러자 장내는 웃음의 도가니가 되고,
여기 저기서 "나는 일본식(一本式)으로!"혹은
"와시와 니혼시끼(日本式)데...(나는 일본식으로...)"하면서
코를 푸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덧붙임 : 남바우는 남여가 같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단 이름은 남자가 쓰면 '남바우', 여자가 쓰면 '조바우'라 했다고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저도 설날에 누빈 한복고쟁이에 색동저고리를 입고 동양자수로

수놓은 조바우를 쓴 기억이 가물가물,..^^*..  요즘에도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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