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누리 931

편혜영의 문장배달 - 이경,「비둘기에게 미소를」 중에서

이경,「비둘기에게 미소를」 중에서 이경, 「비둘기에게 미소를」을 배달하며 거리에서 다친 비둘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발을 다친 비둘기는 비교적 흔하고, 몸통에 상처가 난 비둘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비둘기는 다른 비둘기와 먹이를 두고 하는 다툼에서 늘 밀릴 수밖에 없지요. 그러다 보니 상처는 아물지 않고 점점 더 야위고 왜소해지기 마련이고요. 도시에서 비둘기가 워낙 흔한 새이다 보니 아무리 다쳤다고 해도 연민과 인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비둘기가 다가올라치면 아예 다른 곳으로 피해 버리거나 가까이 오지 못하게 발을 굴려 일부러 쫓아버리기도 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비둘기 돌보는 일을 합니다. 본래 옆 사무실의 류 계장이 돌보던 비둘기인데, 어쩌다 보니 떠안아 맡아 키우게 됩니다. 류 계장은 ..

책 한누리 2022.04.28

편혜영의 문장배달 -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배달하며 뜨개질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몇 번 해보고 나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능숙한 뜨개질의 비밀은 힘을 빼는데 있다는 걸 말입니다. 뜨개질을 처음 하게 되면 혹여 놓칠까봐 실도 꽉 쥐고 바늘도 꽉 쥐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바느질한 땀이 엄청나게 촘촘하고 단단해집니다. 땀 사이에 바늘을 찔러넣기도 힘들 정도가 됩니다. 그러니 바느질은 힘든 일이 됩니다. 실을 꽉 쥐느라 온몸의 힘을 주다 보니 손목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등을 동그랗게 구부리고 있느라 어깨도 아파옵니다. 힘을 주면 결국 뜨개질을 오래 못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뜨개질을 하려면 몸의 힘을 빼야 합니다. 한 땀 한 땀 느슨하게 떠나가야 그 다음 땀으로, 다음 ..

책 한누리 2022.04.14

문장배달 편혜영 / 최현우 「우리는 모두 한번쯤 상계동에 살았겠지요」

최현우 「우리는 모두 한번쯤 상계동에 살았겠지요」 최현우 「우리는 모두 한번쯤 상계동에 살았겠지요」을 배달하며 어느 ‘동네’에 사십니까. 살고 있는 ‘아파트’의 브랜드 말고, 살고 있는 ‘동네’요. 한 동네에 오래 살아본 사람만이 아는 동네의 기척이 있습니다. 단골 과일 가게 주인이 장사 준비를 시작하려고 기지개를 켜고 허리를 쭉 펴는 모습, 모퉁이 떡집에서 방금 나온 떡을 냄새만으로 알아차리는 일, 문을 닫은 가게 자리에 어떤 가게가 들어올지 기웃거리며 자주 들여다보는 고갯짓이나 핫도그나 붕어빵 파는 트럭이 오는 요일을 체크해 두는 일 같은 것이요. 올해는 가로수 중 어느 나무의 꽃이 먼저 피는지, 화원에서 내놓은 나무가 지난 계절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단골 세탁방의 건조기는 언제 한가한지도 저절로 알..

책 한누리 2022.03.31

편혜영의 문장배달 - 이민진, 「장식과 무게」 중에서

편혜영의 문장배달 - 이민진, 「장식과 무게」 중에서 이민진, 「장식과 무게」을 배달하며 정우신은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 사람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정우신은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좋은 사람이면서 보물찾기를 하는 소녀 같은 면모를 지닌 사람이기도 합니다. 골판지 상자 같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이런 다양한 진술을 통해서 ‘정우신’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정우신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형으로 친다면 사람은 종이인형처럼 앞과 뒤가 납작한 존재가 아니라, 뜨개로 짜서 솜을 잔뜩 넣은 편물 인형에 가깝습니다. 앞에서 보는 모습과 뒷모습, 옆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제각기 다르게 보이는 존재이지요. 그처럼 사람은 보는 위치와 그간의 관계, 함께..

책 한누리 2022.03.17

편혜영의 문장배달 / 임솔아, 「초파리 돌보기」

편혜영의 문장배달 / 임솔아, 「초파리 돌보기」 임솔아, 「초파리 돌보기」을 배달하며 실험실에서 초파리 키우는 일을 하던 원영이 어느 날 원인 모를 병에 걸렸다면, 누구나 쉽게 실험실의 환경을, 실험 중 사용한 약품이나 부주의한 약물 사용을 의심하게 됩니다. 실제로 비슷한 뉴스를 들어본 적도 있으니 영 개연성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지유의 생각대로 원영의 병은 산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원영은 실험실에서의 일을 꿈처럼 소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찮은 초파리를 소중히 키웠고 자신이 해를 끼칠까봐 염려했습니다. 원영이 지유에게 소설의 아이디어인 척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를 되새기노라면, 원영의 지난 삶이 생생히 그려집니다. 원영이 그동안 감내해 왔던 것은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이산화탄소나 초파리를 키우..

책 한누리 2022.03.03

편혜영의 문장배달 / 전명윤, 「가이드북이라는 장르의 역설」

편혜영의 문장배달 / 전명윤, 「가이드북이라는 장르의 역설」 전명윤, 「가이드북이라는 장르의 역설」을 배달하며 멀리 여행을 떠나신 지 오래되셨지요? 특히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로의 여행이요.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면 먼저 가이드북을 챙기게 됩니다. 그럴 때 가이드 북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시나요. 사진 자료가 다양하고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많은 책, 누구에게나 알려진 여행 코스말고 색다른 장소를 추천하는 가이드북이라면 손색이 없겠지요. 하지만 가이드북에 표기된 정보만 의지하고 있다가 당황한 경험도 있으실 겁니다. 발행된 지 오래 된 가이북일수록 정보 오류는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이미 출판된 책에는 교통 사정이나 현지 상황이 발 빠르게 반영되기 어렵다 보니 그런 일은 종종 벌어집니다. 여행..

책 한누리 2022.02.18

편혜영의 문장배달 - 서유미,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중에서

편혜영의 문장배달 - 서유미,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중에서 서유미,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을 배달하며 체크아웃과 체크인의 시간을 지나면서 오후가 되었다. 체크인한 손님들은 테이블 옆에 트렁크를 세워 둔 채 커피를 마시거나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거실로 들어갔다. 봄이 왜 이렇게 짧아. 시간이 점점 빨리 흘러가. 호텔 안의 모든 사람들이 계절과 시간에 대한 얘기만 주고받는 것 같았다. 오후 산책 못 할 것 같아. 지호가 우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섬 밖으로 나갔다가 마지막 배를 타고 돌아올 거라고 했다. 괜찮아. 산책은 다음에 하면 되지. 이번에는 내가 웃는 이모티콘을 붙였다. 무슨 일 때문에 나가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몇 글자 쓰다가 지웠다. 산책 대신 강기슭의 벤치에..

책 한누리 2022.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