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가을모음

cassia 2006. 9. 25. 04:39


인애란 러브스케치

 

 


 

가을시 겨울사랑 / 전재승


가을엔
시(詩)를 쓰고 싶다.
낡은 만년필에서 흘러
나오는
잉크빛보다
진하게
사랑의
오색 밀어(密語)들을
수놓으며
밤마다 너를 위하여
한 잔의 따뜻한 커피같은
시(詩)를
밤새도록 쓰고 싶다



인애란 러브스케치



가을날 / 김현성


가을 햇살이 좋은 오후
내 사랑은 한때 여름 햇살 같았던 날이 있었네
푸르던 날이 물드는 날
나는 붉은물이 든 잎사귀가 되어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지
그대 오는 길목에서
불 붙은 산이 되어야지
그래서 다 타 버릴 때까지
햇살이 걷는 오후를 살아야지
그렇게 맹세하던 날들이 있었네
그런 맹세만으로
나는 가을 노을이 되었네
그 노을이 지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았네



인애란 러브스케치



가을시 2 / 유재영


지상의
벌레소리
씨앗처럼
여무는

다 못 쓴
나의 시
비워둔
행간 속을
금 긋고
가는 별똥별
이 가을의
저 은입사(銀入絲)!


* 은입사 : 청동이나 주석 등에 새겨 넣은 은 줄.



인애란 러브스케치



가을 저녁의 시 / 김춘수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인애란 러브스케치



가을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읍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읍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인애란 러브스케치



가을엔 1 / 추경희


시간이 가랑잎에 묻어와
조석으로 여물어 갈 때
앞 내 물소리
조약돌에 섞여
가을 소리로 흘러내리면
들릴 듯 말 듯
낮익은 벌레소리
가슴에서 머문다
하루가 달 속에서 등을 켜면
한 페이지 그림을 접 듯
요란 했던 한해가
정원 가득 하늘이 좁다



인애란 러브스케치



가을의 시 / 김초혜


묵은 그리움이
나를 흔든다

망망하게
허둥대던 세월이
다가선다

적막에 길들으니
안 보이던
내가 보이고

마음까지도 가릴 수 있는
무상이 나부낀다



인애란 러브스케치



가을에 아름다운 것들 / 정유찬


가을엔
너른 들판을 가로 질러
노을지는 곳으로
어둠이 오기 전까지
천천히 걸어 보리라

아무도 오지 않는
그늘진 구석 벤치에
어둠이 오고 가로등이 켜지면
그리움과 서러움이
노랗게 밀려 오기도 하고

단풍이
산기슭을 물들이면
붉어진 가슴은
쿵쿵 소리를 내며
고독 같은 설렘이 번지겠지

아, 가을이여!
낙엽이 쏟아지고 철새가 떠나며
슬픈 허전함이 가득한 계절일지라도
네게서 묻어오는 느낌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뿐이네

 

 

 

 

 

 

 

 


 

'시와 憧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의 매듭  (0) 2006.10.02
아지매는 할매되고  (0) 2006.09.29
사랑은 그리울 때가 더 아름답습니다  (0) 2006.09.09
마음쉬기  (0) 2006.09.07
인생길은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일방통행로  (0) 2006.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