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磬 小理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23> 인물을 묘사하는 음악-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cassia 2023. 5. 27. 09:33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23> 인물을 묘사하는 음악-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에그몬트 백작. 서영처 교수 제공

역사상 괴테(1749-1832)의 작품만큼 음악으로 많이 만들어진 예는 드물 것이다. 당대와 후대의 수많은 음악가들이 괴테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성악곡, 독주곡, 실내악곡, 오페라, 오라토리오, 관현악곡 등을 썼지만 멘델스존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괴테의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심지어 베토벤(1770-7827)이나 슈베르트(1797-1828)까지도.

'에그몬트'(Egmond·1522-1568)는 실재인물로, 16세기 중엽 스페인의 압제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분투하던 네델란드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괴테는 독립운동가 에그몬트 백작의 영웅적 삶에 감명을 받아 12년에 걸쳐 5막으로 이루어진 역작을 완성했다. 괴테는 냉혹한 제국주의적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희생당하는 에그몬트 백작과 그의 연인 클레르헨의 비극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드러냈다.

베토벤은 당대 최고의 작가 괴테와 실러를 존경했고 그들의 작품에 관심이 지대했다(9번 교향곡 '합창'은 실러의 '환희의 송가'에 작곡을 했다). 마침 베토벤은 빈 부르크 극장의 지배인으로부터 괴테의 비극 '에그몬트' 상연에 필요한 음악의 작곡을 의뢰받았고, 이를 수락하여 서곡을 포함한 10곡의 극음악을 작곡했다. 특히 서곡에는 자유사상가다운 그의 진보적인 성향과 강인한 의지가 담겨있어 지금까지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으로 꼽히고 있다.

'에그몬트 서곡'(Op.84)은 확고한 형식성의 구축으로 에그몬트라는 인물을 구성하는 골격과 강인한 정신력을 표현한다. 베토벤은 서주의 느리고 장대하며 극적인 모티프와 박진감 넘치는 리듬으로 에그몬트 백작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저음의 엄숙한 모티프와 리듬은 강력한 힘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관객들은 전례 없는 숭고한 감동을 느끼며 에그몬트 백작의 전모를 단숨에 파악할 수 있다. 모티프는 반복과 발전, 확장을 거듭하고 조성의 변화를 통해 투쟁의 과정을 나타내며 승리를 향해 나아간다.

빈틈없는 음악적 설계와 견고한 건축적 구조는 에그몬트 백작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의 이상은 죽음을 이겨내고 네델란드 독립의 기틀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웅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에그몬트 서곡'은 베토벤의 전작 교향곡 5번 '운명'의 음악적 전개와 유사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을 묘사한다는 것은 외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외면을 통한 내면과 정신의 표현이어야 한다. 베토벤은 음악을 정신적인 인식이 구체화된 결과라고 했다. 그러한 점에서 '에그몬트 서곡'은 한 영웅의 삶을 세밀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본 음악적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은 에그몬트 백작의 모습을 평면적인 회화로 구성하지 않고 입체적이고 건축적인 구성을 통해 살아 있는 구체적인 인물로 부각했다.

'에그몬트 서곡'은 극적인 박력과 역동적인 전개로 영웅의 내면과 의지를 담았다. 그러하기에 이 작품은 자유 예술가로서 베토벤의 체험과 신념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심헌재 기자 gjswo0302@imaeil.com
매일신문 입력 2023-02-13 (mon)

L.v.Beethoven "Egmont" Overture, Op 84

https://youtu.be/0uJQV27pR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