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누리

冊, 아버지의 해방일지

cassia 2022. 9. 17. 15:37

소설의 주인공은 '전직 빨치산'인 아버지다. 지리산과 백운산을 누빈 빨치산이었던 작가 아버지의 일대기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빨치산의 딸'과 이 책이 겹쳐 읽히는 이유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을 딸 '아리'의 시선으로 다룬다. 장례식장에 친척들과 지인들이 모이고, 그들의 회고와 증언을 통해 아버지의 지난 삶의 조각이 조금씩 맞춰진다.

 

아리가 바라보는 부모님은 '뼛속까지 사회주의자'다. 옥살이를 마치고서도 한국에서 자본주의를 거부하며, 평생을 시골에서 사회주의자로 살아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늘 '혁명을 목전에 둔 듯 진지한' 태도로 살아가는 모습은 흡사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혁명'에 대한 아버지의 진지한 태도를, 현실주의자 딸은 견디기 어려웠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가 늘어놓는 장광설과 현실과 동떨어진 이데올로기적 허상은 아리가 고향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차를 놓쳐 겨울밤에 한뎃잠을 자게 된 낯선 방물장수를 데려와 재우려는 데에 아내가 불만을 품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숨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

 

'자본주의는 인류의 적이다! 공산주의 만세!'라는 문구가 적힌 옛 소련 선전 포스터.

 

아버지의 장례식장은 그동안 아리가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버지가 지나온 시간을 함께한 이들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을 딸에게 전한다. 때로는 서글프고, 실없이 웃음이 나는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하나는 분명해진다. 아버지는 이념보다는 인간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던 것.

 

아리는 아버지가 많은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며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여기엔 해방 후 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며, "니는 그리 잘나서 집안 말아묵었냐"고 행패를 부리던 작은 아버지, 평생을 군인과 교련 선생으로 일해 온 우파 성향의 초등학교 동창, 아버지의 담배 친구라던 노랑머리의 열일곱 살 소녀, 경로당에 가서 한바탕 난리를 피워 아버지의 '가오'를 세워준 학수까지.

 

마침내 딸은 "긍게 사램이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맨얼굴의 아버지를 마주하게 된다.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연대 정신이 어쩌면 아버지가 추구한 '해방' 아니었을까. 그렇게 딸은 아버지에게 보낸 냉소적인 시선을 거두고, 뒤늦은 용서를 구한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268쪽, 1만5천원.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장편소설 - 유시민 저자 추천 도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 교보문고

정지아 장편소설 | 시트콤 같은 일화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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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언 기자 shyoung3@imaeil.com

대구매일신문 2022-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