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38) 번역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cassia 2019. 7. 11. 04:11



(138) 번역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채식주의자'가 멘부커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을 때의 일이다. 소설가 한강과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의 공동수상이 발표되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번역자가 왜?' 이 반응은 내 주변에서도 동일하게 나왔다. "소설은 작가가 썼는데 번역가가 왜 함께 받지? 번역가가 무엇을 했다고?" 이 질문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간단하다. '공동수상을 할 정도로 번역가가 한 일은 많다.'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독자가 읽은 서양소설은 일본어 번역을 다시 조선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영어원작을 직접 조선어로 번역한 것은 단 두 편밖에 없었다. '엘렌의 공(功)'(1921)과 '붉은 실'(1921)로, 번역자는 김동성이었다. 당시 조선 인구의 99%가 글을 읽지 못했고, 초등학교 취학률이 5%를 조금 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더해 초등교육이라도 받은 조선인은 일본어 의무교육을 받아 일본어를 읽을 수 있었기에 굳이 조선어 번역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남은 것은 한 부류, 한글은 읽을 수 있지만 초등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문물에 대한 흥미보다는 춘향전류의 읽을거리를 즐겨 읽는 사람들이었다. 미국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서양식 인명과 낯선 지명, 어려운 과학용어로 가득 찬 소설을 읽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두 편의 직역이 조선독자들에게 외면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어둠과 빛을 반반씩 가지고 있듯 김동성의 직역 시도도 그러했다. 일본을 통해서만 서양을 접하고 있었던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김동성의 직역 시도가 일으킨 긍정적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 일본이라는 매개 없이 서구의 앞선 문물을 직접 수용해서 자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것이다. 직역 시도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 시도에 깃든 희망의 기억까지 소멸되는 것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그 과정에서 영미와 조선간의 사회문화적 차이까지 고려하지는 못했다. 그의 번역이 우리문학사상 의미를 지니면서도, 대중적으로 수용되지 못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 결과 해방이 될 때까지 김동성의 두 편의 번역소설을 제외한 모든 서양소설은 원작과는 다른 형태로 번역되었다. 읽기 쉽도록 인명, 지명이 조선식으로 바뀌고 내용도 당시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과감하게 생략되어서 독자들에게 쉽게 수용되었다.

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변환을 넘어 문화의 수용을 포함한 작업이다. 번역가는 타언어를 자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화적 이질성을 고려한다. 우리가 국경을 넘어 다른 문화권에 들어서는 순간 받는 문화적 충격과 이질감을 언어도 받는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 충격과 이질감을 자국문화, 자국 언어와 잘 조화시켜 바꾸어주는 사람이 번역가이다. 그런 점에서 번역가에게도 공동수상의 영광을 함께 안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사진(右) : 1921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동성의 엘렌의 공(功)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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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9-07-11 (Th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