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37) ‘춘향‘이 만들어낸 사랑의 의미

cassia 2019. 6. 27. 04:57



(137) ‘춘향‘이 만들어낸 사랑의 의미

 

언제부터인가 TV에서 '춘향전'이 사라졌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춘향전'은 명절 단골 연속극이었다. 매년 새로운 배우들로 새롭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기본 내용은 변함이 없었다. 197•80년대라면 시청률 50프로를 넘는 국민 연속극이 심심찮게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 전설적 연속극 사이에서 '춘향전'은 변함없는 힘을 지니고 사람들을 TV앞으로 끌어들였다.

일제강점기 동안에도 '춘향전'은 소설로, 영화로, 창극으로 쉴 새 없이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명창들이 모여 부른 '춘향전' 창극이 유성기음반으로 발매되는가 하면 일본 전통극 가부키와 접목시킨 일본화된 '춘향전'이 현해탄을 넘어와 조선에서 일본어로 공연되기도 했다. 장혁주의 일본어 희곡 '춘향전'(1938)은 이와 같은 '춘향전' 열풍 속에서 발표된다.

장혁주가 풀어내는 '춘향전'은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복숭아꽃이 질 무렵, 봄비가 지독하게 내리는 밤. 이몽룡이 비에 흠뻑 젖으면서 춘향을 만나러 온다. 희곡 '춘향전'에는 이와 같은 몽룡과 춘향의 열정적인 사랑의 기운이 극 전체에 흐르고 있다. 이몽룡의 사랑은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에도 변함이 없다. 4년이라는 긴 세월, 그가 춘향에게 소식조차 전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춘향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변함없기는 춘향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어떤 잔혹한 운명에도 흔들림 없이 몽룡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지켜낸다.

또한 춘향은 봄날처럼 따뜻한 사람이어서 오랜 세월 소식 한 자 전하지 않은 몽룡을 탓하기보다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몽룡의 편안한 잠자리와 안위를 신경 쓰는 인물이다. 따뜻한 마음과 신념을 지켜내는 강직함이 춘향의 내면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춘향이 만들어내는 사랑은 강하면서도 부드럽다. '춘향전'이 발표된 1938년의 조선은 이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필요한 때였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적인 모든 것을 지워가고 있었다. 조선신문을 탄압하고, 조선말을 없애고, 일본을 위해 이국(異國)의 전쟁터에서 죽을 것을 강요하던 때였다.

조선의 현실은 암울했고, 사람들은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조선인이 조선인으로 있을 수 없었던 시기, 소설가 장혁주는 조선전통소설 '춘향전'을 근대 문학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친일을 내걸고, 공공연하게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한 장혁주였던 만큼 그가 어떤 마음에서 일본어 희곡 '춘향전'을 창작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춘향전'이 조선인들이 조선을 기억하고, 일본인들이 조선 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춘향전'은 일제가 조선의 기억을 강압적으로 제거해가던 그 순간에도 조선인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잔혹한 시절을 살아남은 '춘향전'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잊힌 역사 속 인물들이 새롭게 조명되는 이 시기, 오랜 기간 조선 문화의 상징적 역할을 담당해온 '춘향전' 역시 재조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진(右) : 장혁주(1905-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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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9-06-27 (Th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