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135) 영화가 만들어주는 꿈

cassia 2019. 5. 30. 02:14



(135) 영화가 만들어주는 꿈

 

1910년대 조선사회는 아름다운 서양 여인 '기지꾸레'에 취해있었다. '기지꾸레'는 미국 무성영화 '명금(名金)'의 여주인공 '키티 그레이'의 일본식 발음이다. '명금'이 일으킨 바람은 영화 상영이 끝난 지 수년이 지난 1920, 1930년대에도 여전히 이어졌다. 잡지에는 '명금' 여주인공인 '기지꾸레'의 화보가 게재되었고, 소설에서는 '기지꾸레 놀이'를 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묘사되곤 했다.

'명금'제 1편이 조선에서 상영된 것은 1916년 6월 23일이다. 당시의 영화관은 일본인 상영관과 조선인 상영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명금'의 조선인 상설 상영관은 우미관이었다. 제작사는 유니버설 영화사이며 원제목은 'The Broken Coin', 즉 '조각 난 금화'이다. 조각 난 금화에 새겨진 정보로 고대왕국의 보물을 찾는 모험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영화라고 하지만 지금과 같은 영화는 아니고 일종의 연속물이었다. 집에서 TV로 시청하는 연속극을 매주 영화관에 가서 본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무성영화여서 조선인 변사가 각 장면의 내용을 멋지게 설명해준다는 것이었다. '명금'이 상영된 1916년의 조선사회는 초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전체 인구의 5%도 되지 않던 때였다. 그러니 조선인 대다수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붙었는지를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지도 못하는 머나먼 서양나라 사람들의 모험이야기에 수많은 조선인들은 열광하였다. '명금'을 비롯한 미국 무성영화를 두고 저속하다는 비판 글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대중들은 그런 우려 따위 아랑 곳 없었다. 여성의 98%가 한글도 읽지 못하던 때였다. 남성이라고 해서 별로 나을 것도 없었다. 조선어를 못 읽는데 영어를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키티 그레이'라는 영문명을 '기지꾸레'라는 일본식 발음으로만 수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주인공 이름의 발음 따위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화려한 영화화면에 변사의 흥미진진한 해설이 더해지니 글을 읽을 줄 몰라도 되고, 세계지리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명금'의 세계는 식민지의 암울하고 음습한 현실과는 전혀 달랐다. 주인공들은 어떠한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였고, 세계는 그런 주인공들의 노력에 보답하듯 언제나 멋진 보상을 제공해주었다. '명금'에는 조선인들이 꿈꾼 세상의 모든 모습이 들어 있었다. 적어도 '명금'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그들 모두 환상에 취해서 가난한 식민지인으로서의 피곤함, 쓸쓸함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 무성영화가 가난한 식민지 조선인의 위로가 되어주던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다. 일제 강점기 소설가 박태원은 '명금'을 소설 모티프로 사용할 정도로, 미국 영화 '명금'에 취해있었다. 이제 그의 외손자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을 한국 영화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겨우 백년이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사진(右) : 소설 '명금' 표지(1920, 신명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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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9-05-30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