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이병률,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낭송 : 김 근)

cassia 2010. 3. 15. 05:06

이병률,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낭송 : 김 근)   

 

 


며칠째 새가 와서 한참을 울다 간다 허구한 날 새들이 우는 소리가 아니다 해가 저물고 있어서도 아니다 한참을 아프게 쏟아놓고 가는 울음 멎게 술 한 잔 부어줄걸 그랬나, 발이 젖어 오래도 멀리도 날지 못하는 새야

 
지난날 지껄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술을 담근다 두 달 세 달 앞으로 앞으로만 밀며 살자고 어둔 밤 병 하나 말갛게 씻는다 잘난 열매들을 담고 나를 가득 부어, 허름한 탁자 닦고 함께 마실 사람과 풍경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저 가득 차 무거워진 달을 두어 곱 지나 붉게 붉게 생을 물들일 사람

 
새야 새야 얼른 와서 이 몸과 저 몸이 섞이며 몸을 마려워하는 병 속의 형편을 좀 들여다보아라

 
*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의 시 「선택의 가능성」에 나오는 한 구절. 
  
시 / 이병률 –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으며,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바람의 사생활』『찬란』, 여행산문집 『끌림』 등이 있음.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함.
 
낭송 / 김근 – 시인.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뱀소년의 외출』『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등이 있음.
출전 /  『바람의 사생활』(창비)
음악 / 자닌토
애니메이션 / 정정화
프로듀서 / 김태형

 

이병률의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오래」를 배달하며...

 

한 사내 생각이 났지요. 저만치 와 우는 새를 바라보는 사내. 그 울음의 단음계를 며칠째 듣고 있는 사내. 울음의 내력을 자상하게 살피는 사내. 그리고 술을 담그는 사내. 열매의 과육 같은 말들을 내부로 다 거둬들인 사내. 그리고 아마 춤곡을 들으며 병을 씻고 있을 사내. 미래의 시간을 미리 가늠해보기도 하는 사내. 식탁에 마주 앉을 사람을 떠올려 보는 사내. 문득 이 시가 물굽이처럼 전환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군요. 그러나 몸이 섞이며 향기 좋은 술로 무르익는 날은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인가요. 새를 부르는 사내. 새가 된 사내. 멋지지 않나요. 이런 사내라면.

 

문학집배원 문태준 2010.03.15 (월)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