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파도타기 ― 정호승

cassia 2018. 1. 29. 21:49

파도타기 ― 정호승


 

파도타기

 

  정호승

 

 

겨울밤이 깊어갈수록

눈 맞으며 파도 위를 걸어서 간다

쓰러질수록 파도에 몸을 던지며

가라앉을수록 눈사람으로 솟아오르며

이 세상을 위하여 울고 있던 사람들이

또 이 세상 어디론가 끌려가는 겨울밤에

굳어버린 파도에 길을 내며 간다

먼 산길 짚신 가듯 바다에 누워

넘쳐버릴 파도에 푸성귀로 누워

서러울수록 봄눈을 기다리며 간다

다정큼나무숲 사이로 보이던 바다 밖으로

지난 가을 산국화도 몸을 던지고

칼을 들어 파도를 자를 자 저물었나니

단 한 번 인간에 다다르기 위해

살아갈수록 눈 내리는 파도를 탄다

괴로울수록 홀로 넘칠 파도를 탄다

어머니 손톱같은 봄눈 오는 바다 위로

솟구쳤다 사라지는 우리들의 발

사라쳤다 솟구치는 우리들의 생

 

- 정호승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1979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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