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 (90) 김동인 ‘백마강’과 동인문학상

cassia 2017. 8. 19. 08:39



김동인 ‘백마강’과 동인문학상

 


2011년 소설가 김동인의 아들이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김동인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재판부가 “김동인의 친일행위 인정 결정은 적법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부는 김동인이 매일신보에 11차례 발표한 징용을 선동하고 선전한 글과 소설 ‘백마강’을 판결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아울러 ‘백마강’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역사적으로 한 나라나 다름없다는 내선일체를 주제로” 한 친일소설이라고 지적하였다.

‘백마강’은 1941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소설이다. 소설의 제명인 백마강은 금강 하류 부여지역을 흐르는 강이다. 왕조 중흥의 의지를 다졌던 이곳에서 백제는 결국 패망의 비운을 겪는다. 사실 여부가 논란이 되는 삼천 궁녀의 낙화암이 있는 곳도 바로 이 지역이다. 말하자면 백마강은 백제 왕조의 영화와 멸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상징적 장소이다.

소설은 일본(왜나라)으로 유학을 간 백제 소녀 봉니수가 왜나라 소녀 오리메와 함께 귀국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시작부터 일본과 백제의 동맹관계가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소설은 의자왕의 실정으로 백척간두에 선 왕조와 백제를 살리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충신 복실과 그의 아들 집기를 비롯한 여러 젊은이의 충정 어린 모습을 묘사해 간다. 이 과정에서 일본과 백제의 동맹관계가 강조되고, 백제의 지원국인 일본의 모습도 두드러진다. 김동인을 친일파로서 규정한 근거가 되는 “일본과 조선이 한 몸”이라는 내선일체 사상이 소설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소설이 발표된 1941년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으로 향해가던 시기였다. 조선인이 대일본제국의 신민임을 깊이 자각하고 일본제국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였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백마강’은 당연히 조선인의 희생을 독려한 친일소설이다. 누구도 그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백제 왕조의 흥망을 다룬 역사소설을 ‘친일과 반일’이라는 단선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백마강’에는 일본에 대한 백제문화의 우월성 피력 의지가 내선일체 사상만큼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다. 일제의 힘에 무릎 꿇고 그 권위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면서도, 조선인의 자존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일제 말기 지식인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거기에는 있었다.

최근 친일문인들의 이름을 내건 친일문학상 폐지 논의가 다시 재개되고 있다. 여기에 동인문학상도 포함되어 있다. 동인문학상은 1955년 장준하가 이끌던 ‘사상계’가 제정한 문학상이다. 반백 년 동안 한국문학의 한 축을 형성해온 유서 깊은 문학상을 “친일문인의 이름을 내세운다”는 이유로 폐지하자는 것이다. 김동인이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은 심대하다. 과(過)만큼이나 공(功)도 많다. 반일의 상징 장준하가 김동인의 친일 전력을 몰라서 김동인 이름을 내건 문학상을 제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동인의 공과 과를 장준하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논의할 수는 없을까. 우리 사회도 이제 김동인의 공과 과를 균형 있는 시각에서 바라볼 만큼 성숙해지고 있다. .................................(사진 : 소설가 김동인과 매일신보에 연재된 ‘백마강’ 1회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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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대학교 기초교육대학 초빙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7.08.19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