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 (84) 셜록 홈즈와 김내성의 ‘타원형의 거울’

cassia 2017. 5. 27. 18:02



셜록 홈즈와 김내성의 ‘타원형의 거울’


‘셜록 홈즈’는 오랜 기간 추리소설 독자의 사랑을 받아 온 가상의 탐정이다. 영국 작가 코난 도일이 130년 전 만들어 낸 이 탐정은 놀라운 통찰력과 전문지식을 활용해서 아무리 난해한 범죄 사건이라도 척척 해결해낸다. 그의 탁월한 추리력 덕분에 언제나 악은 척결되고 사회는 안정을 되찾는다. 그런데 셜록 홈즈의 활약상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인 셜록 홈즈가 해결하는 수많은 사건의 범인 대부분이 식민지 인도 또는 아프리카와 같은 ‘미개한’ 지역 출신이라는 점이다. 명탐정 셜록 홈즈가 상징하는 것은 제국 영국의 우월성이며,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사회 일반의 안위가 아니라 대영제국의 안위였다.

서구에서 탐정소설은 이처럼 제국주의 문학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탄생하였다. 그렇다면 식민지 작가와 제국주의 문학인 탐정소설이 만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일제강점기 유일의 탐정소설 작가였던 김내성의 처녀작 ‘타원형 거울’(橢圓形の鏡`1934)은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타원형 거울’은 일본 유명 탐정소설 전문잡지에 일본어로 발표된 소설이다. 소설가 모현철의 아내가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자, 그 범인을 추적해 가는 것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경찰과 검찰의 치밀한 수사 덕분에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했던 잔혹한 범죄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고, 마침내 사회는 안정을 되찾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범죄 관련자들은 조선인이나 일본인 이름이 아니라, 왕룡몽(王龍夢), 도영(挑英), 청엽(淸葉) 등 중국인에 가까운 이름을 달고 있다. 식민지 조선인이 담당해야 할 범죄자 자리를 중국인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이 발표된 1934년, 일본과 조선 모두 중국과 긴장 관계 속에 있었다. 일본은 만주국 건설(1931)을 시작으로 중국 대륙 침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중국 만보산에서 일어난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의 분쟁(1931)으로 100여 명의 중국인이 참살당한 직후였다. 이런 시기에 김내성은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내세워 제국의 권위와 안위를 준수하는 추리소설의 본질적 특징을 절묘하게 지켜내고 있었다. 중국인을 범죄자로 설정함으로써 일본제국의 권위는 권위대로 지키면서 조선인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식민지 조선의 작가 김내성은 제국의 거대한 힘에 맞설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조선을 버릴 수도 없었다. 이것이 김내성 같은 식민지 지식인이 직면한 비극적 현실이었다. 식민지 시기를 거쳐 해방, 전쟁, 경제개발 같은 격변의 시기를 지나면서 한국은 이제 선진 시민사회가 되었다. 이 길고 긴 변화를 겪고 난 지금의 우리가 김내성 같은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성찰하고 고민한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시민이 중심이 되는 시민사회 시대를 사는 것만은 분명하다. 갈등의 시대가 가고 통합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일본제국에 맞설 수도, 그렇다고 조국을 버릴 수도 없었던 김내성 같은 식민지 지식인에게 ‘친일’과 ‘반일’의 매서운 칼날이 아니라 좀 더 따뜻한 이해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사진 : 일본 탐정소설 전문잡지 '프로필' 1934년 12월호에 게재된 김내성의 '타원형의 거울'(橢圓形の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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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미래대 산학협력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7.05.27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