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스크랩] (좋은詩)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시집

cassia 2017. 7. 29. 04:23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시집

 

 

 

상처마저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 서정의 깊이!
등단 25년을 맞은 시인 정일근의 열 번째 시집.


1984년 <실천문학> 제5권에 신인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일근의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에서는 시인에 의해 호명된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끝내 자신의 전부를 보여주지 않는 고래의 이미지는 시인이 생각하는 시의 모습이자 시적 자아가

궁극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랑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안도현 시인은 "죽음 직전의, 아픔의 우물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와서 정일근 형의 시는

이렇게 한세상을 얻어 깊어졌다. 바야흐로 무르익은 절정이다"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개성적인 시 세계가 담긴 정일근 시인의 이번 시집은 시인의 눈에 비친 자연과 사람들의

섬세한 감성이 조탁의 언어로 담겨 있다.

제1부 <분홍 팬티> 에서는 '바다'와 '고래'의 이미지가 두드러져 나타나 심연에 자리한 외로움과

그리움의 정서를 형상화 하였고, 제2부 <채송화> 에는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 짧은 시들로 자연을 노래한다.

제3부 <은현리>는 시인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마을 이름이기도 하면서 내면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는 장으로

유독 상처에 관한 시편들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는 아름다운 노래로 탈바꿈된다.



이 책에 담긴 시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정일근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 별로 돌아가며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정일근

 
 정일근시인
시인 정일근은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를 졸업했다.

 1984년 『실천문학』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처용의 도시』『경주 남산』『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오른손잡이의 슬픔』『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 등이 있다.

시와시학 젊은시인상(2001), 소월시문학상(2003), 영랑시문학상(2006), 포항국제동해문학상(2008) 등을

수상했으며, ‘시힘’과 ‘작은詩앗·채송화’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시나브로
글쓴이 : Sim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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