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김용화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낭송: 도종환)

cassia 2017. 7. 15. 04:52

김용화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낭송: 도종환)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

 

김 용 화

 
소한날 눈이 옵니다
가난한 이 땅에 하늘에서 축복처럼
눈이 옵니다
집을 떠난 새들은 돌아오지 않고
베드로학교 낮은 담장 너머로
풍금소리만 간간이 들려오는 아침입니다
창문 조금 열고
가만가만 눈 내리는 하늘 쳐다보면
사랑하는 당신 얼굴 보입니다
멀리 갔다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겨울나무 가지 끝에
순백의 꽃으로 피어나는 눈물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한 까닭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다림의 세월은 추억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만나서는 안 되는 까닭은
당신을 만나는 일이
내가 살아온 까닭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한 방울 피가 식어질 때까지
나는 이 겨울을 껴안고
눈 쌓인 거리를 바람처럼 서성댈 것입니다

    
출처 -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 문학세계사, 2004(2005년 1분기 우수문학도서)


  김용화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를 배달하며
 

“당신을 사랑한 까닭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말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당신을 만나는 일이 내가 살아온 이유의 전부이기 때문에 당신을 만나서는 안 된다”고 말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시적 역설은 사랑의 역설에서 비롯됩니다. 눈은 축복처럼 내리고 당신은 순백의 꽃으로 피어나지만 그래서 사랑하는 당신은 눈물입니다. 그대도 사랑의 역설을 껴안고 눈 쌓인 거리를 바람처럼 서성댄 적이 있는지요.

 

문학집배원 문학집배원 도종환 2007-01-08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