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영화

[이야기가 있는 그림]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손', '상대성'

cassia 2017. 7. 17. 16:45

[이야기가 있는 그림]경계를 넘나들다 -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손', '상대성' 2017-07-17

 
시작도 끝도 명확치 않은
무한 순환구조를 그려보며
갇힌 사고의 틀을 깨다

 

 

 

어떤 손이 어떤 손을 그리는 것일까? 손이 그림을 그리는데 그려진 그림 속의 손은 또 손을 그리고 있다. 얽히고설키는 무한 순환구조를 통해 시작도 끝도 없는 세계를 펼친 네덜란드 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의 작품은 나도 모르게 두뇌를 풀가동하게 만든다. 위의 작품 ‘그리는 손’은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한다. 수학자 뫼비우스는 “모든 물체는 안과 겉이 있다”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인정받던 시기에 안팎의 구분이 없는 띠를 만들었다. 긴 사각형 종이의 끝을 꼬아 이어 붙여 안과 밖의 구분이 없게 만든 ‘뫼비우스의 띠’는 에셔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는 손’ 역시 2차원 평면에서 3차원과 4차원을 넘나드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한다.


종이는 평면이지만 화가들은 원근법을 통해 X, Y, Z축이 있는 3차원을 종이 위에 구현했고, 피카소 이후에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분할해 원근법이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이제 화가들은 원근법이 사람의 눈에 보이는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보이는 것이 아닌 내면의 세계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에셔의 작품처럼 시점이 어디인지, 몇 차원에 있는지를 잘 모르게 만드는 세계도 구현된다. ‘그리는 손’도 우리가 위에서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어서 그렇지 만일 그리는 손의 일부가 되어본다면 어디가 이상한지 모르는 채 계속 손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영화 ‘인셉션’을 보면 아무리 걸어 올라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이 나온다. 연결된 것 같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끊겨 있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구조다. 수학자 펜로즈의 삼각형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장치인데 에셔도 펜로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나는 납작한 형태에 질렸다. 모든 요소를 평면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
에셔의 말처럼 ‘그리는 손’은 스케치하는 평면에서 시작해 입체가 되어 손을 그리고 있고, 그렇게 그린 손은 다시 평면으로 들어간다. 그림 속 손과 실제 그림을 그리는 손의 경계가 모호한 이 작품은 현실과 허구가 교차하고 진짜와 가짜가 혼재한다. 시작과 끝의 구분이 없고 안과 밖도 없는 애매함 속에서 내가 속한 세계, 보이지 않는 차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지만 전체적 맥락으로 볼 때는 어딘가 이상하다. 초현실적 상상력은 보는 이들을 물음표로 가득하게 만든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는 에셔 작품을 동영상으로 옮긴 듯한 화면이 나온다. 영화 속 모든 공간이 상하좌우로 움직이고, 등장인물은 수직 또는 수평으로 떨어진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기묘한 그림 ‘상대성’ 역시 에셔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외부인지 내부인지, 계속 걸어도 원점으로 돌아가는 구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계단과 다각적 시점으로 가득하다. 차원이 혼재하는 이 작품 역시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게임, 테마파크 등에 다양한 방식으로 차용됐다.


“작품을 통해 우리가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반박할 수 없는 확실성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2차원과 3차원, 평면과 공간을 혼합하고 중력을 무시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평평한 바닥은 천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계단을 오르면 더 높은 평면에 도달한다는 것이 과연 확실한 것일까?”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에서 에셔는 작품을 시작했다. ‘상대성’을 들여다보면 분할된 공간은 각기 다른 차원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 개의 계단이 가운데 공간을 받치고 있으며 사람의 동선과 곳곳에 있는 문의 위치, 연결구조는 순환된다. 계단과 문을 통해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는데 외부로 나간 사람이 내부에 있고, 올라가는 방향이 어디인지, 계단을 올라간 사람이 진짜 올라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안하면서도 고요한 이 느낌은 뭘까? 공간은 뒤틀려있고, 형태는 욕실 타일처럼 반복돼 나도 모르는 사이 그림 구석구석을 파헤치고 있다.
에셔는 스페인을 여행하며 알함브라 궁전의 벽과 바닥 모자이크에서 큰 영감을 받아 작품세계를 만들어갔다. 그래서 이슬람 건축의 특징인 기하학적 통일성을 갖추어 무한 반복의 문양을 만드는 ‘테셀레이션’을 작품에 활용했다.


에드윈 A. 애보트의 소설 ‘플랫 랜드’에는 주인공 스퀘어(정사각형)가 스페이스 랜드(공간 나라)에서 찾아온 스피어(구)를 통해 점의 나라와 선의 나라를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2차원의 원은 3차원의 구를 이해할 수 없지만, 3차원에서는 2차원을 전체적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3차원에 사는 우리가 4차원, 그 이상의 공간을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작품을 통해 규칙에 갇힌 사고의 도돌이표를 끊는 기회를 가져본다.


보이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절대적 진리라 인식되는 것들을 뒤엎어 보기. 2차원의 문제를 3차원에서, 3차원의 문제는 4차원에서, 4차원의 문제를 1차원에서 간단히 생각해 본다면, 현재에 대한 답이 쉽게 보일지도 모른다. 올여름 수학적,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철학적 깊이를 뒤집은 판화가 에셔의 특별전을 보며 짜릿한 체험을 해보자. 평면의 판화를 보며 2차원과 3차원, 4차원의 공간을 넘나들 수 있다면 그것만큼 짜릿한 체험이 어디 또 있을까?


이지현 문화칼럼니스트


에셔 특별전

▶ 기간 : 7월 17일 ~ 10월 15일
▶ 장소 :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 문의 : 02-784-2117


출처 / 한국교직원신문 2017.07.17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