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영화

[이야기가 있는 그림]에릭 사티 ‘짜증’, 파울 클레 ‘명상’

cassia 2017. 6. 28. 23:14

[이야기가 있는 그림]짜증을 넘어서면 보이는 것 2017-06-26 (월)

에릭 사티 ‘짜증’, 파울 클레 ‘명상’

 

 

반복되는 요소 끝 무아지경 
단순함 속 깊은 생각에 빠져


 당신은 오늘 하루, 몇 번이나 짜증을 냈는가? 짜증의 끝을 보여주는 음악 하나 소개할까 한다. 악보 한 장을 무려 840번이나 반복해서 연주하라는 황당한 음악, 에릭 사티의 ‘짜증(벡사시옹:Vexations)’이다. 에릭 사티 하면 감미로운 멜로디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텐데 사실 그는 괴짜 예술가로 유명하다.


‘야무진 데가 없는 개를 위한 전주곡’, ‘역겨운 선 멋쟁이를 위한 세 개의 품위 있는 왈츠’, ‘나무로 된 뚱뚱한 남자의 스케치와 교태’…. 지금껏 그 누구도 붙인 적 없는 희한한 제목 아닌가? 또 평범한 악곡이 아닌 ‘의문을 가지고 연주할 것’, ‘구멍을 파듯’ 같은 독특한 지시어를 제시했다.
 

사티는 검은 모자에 검은 옷, 박쥐 모양의 우산을 쓰고 다녔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파리음악원에서 쫓겨났는가 하면 군대에서 탈영한 적도 있다. 여러 화가와 염문을 뿌린 수잔 발라동에게 버림받은 후에는 평생 혼자 살았다. 외롭지만 자유롭게 살았던 에릭 사티의 문제작 ‘짜증’. 감미로운 멜로디도 몇 번 들으면 질리는 데 익숙지 않은 음의 나열을 840번이나 반복해서 들어라? 그럼, 대체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실제로 연주된 적이 있기는 할까?


그런데 도전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늘 있는지라 1963년 뉴욕에서 11명의 연주자가 15시간 이상 밤을 지새우며 이 곡을 연주했다. 연주자들은 “이 곡을 500번 이상 연주하면 환각 증세가 오며 스스로 연주를 포기하게 된다”고 했고, 평론가는 “어지간한 인내심 없이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음악”이라고 했다. 청중 중에는 “처음엔 지겨웠는데 나중엔 도 닦는 기분이 되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짜증을 넘어선 단계의 명상이라…. 반복되는 멜로디를 15시간 이상 듣는 것은 마라톤에서 일정 거리가 지나면 무념무상, 무아지경에 이르는 경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여기 ‘명상’이란 주제를 간단하게, 하지만 가슴과 머리로 동시에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이 있다.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1879~1940)의 ‘명상’이다.


지적이고 창의적인 미술가로 꼽히는 스위스 화가 클레는 아이 같은 그림 속에 숨겨진 관념, 문자나 기호, 조형적 요소를 동화적 문법으로 풀어낸 독창성으로 유명하다. 위의 그림 ‘명상’도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절을 하는 것 같은 자세, 눈, 상형문자와 다양한 기호 속에서 미로를 찾는 것도 같고, 스님 말씀을 들으며 고요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있지도 않은, 잠잠하고 사색적인 그림이다. 그래서 좋다.


“미술은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는 클레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전쟁과 공황, 학살로 얼룩진 20세기 초를 살았던 클레는 화가이면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시인, 교육자, 예술이론가다. 어수선한 시기를 살았던 만큼 예술가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1930년대 나치 정권에 낙인이 찍혀 작품을 몰수당했고, 교수직에서 쫓겨나는가 하면, 말년에는 근육경색증이라는 희소병에 시달리며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다. 하지만 이런 시대 흐름 속에서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보적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그는 평생 일기를 썼고, 철학, 식물학, 인류학 등 폭넓은 독서로 광범위한 지식을 얻었다. 또 자연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지 않고서는 예술가가 될 수 없다며 꽃과 나무, 바다, 물고기 등 사물에 대해 끊임없이 관찰했고, 여기서 발전시킨 이미지를 작품에 반영했다.


“어린아이의 그림, 옛날 바위의 그림이 나의 스승이다.”


보이는 것을 이미지와 텍스트로 결합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구현한 클레의 작품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수수께끼 같은 물음을 던진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클레의 그림은 조형 요소와 기호, 이미지, 문자 등이 혼재하고, 천진난만한 형상과 동화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오늘도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말 한마디도 못한 수많은 사람에게 에릭 사티처럼 자유인으로 살 수도 있고, 클레처럼 세상을 초월한 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이 세상을 사는 새로운 제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지현 문화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교직원신문 2017-06-26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