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載 칼럼

[정혜영의 근대문학] (3) 신소설 '혈의누'는 이인직이 흘린 피눈물

cassia 2014. 1. 18. 14:41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2014.02.08 : 09 :25 :58

 

신소설 ‘혈의누 ‘는 이인직이 흘린 피눈물

 

◀ (소설 '혈의 누' 표지와 이인직의 초상)

 

청일전쟁 격전지가 조선의 평양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1894년 청나라, 즉 중국과 일본은 조선 관할권을 두고 아웅대다가 평양에서 일대 격전을 벌인다. 여기에 대구도 한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의 달성공원 기슭에 일본 헌병대가 주둔하여 일종의 후방 부대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격전은 평양에서 벌어졌고, 결과는 참혹했다. 모젤 소총, 크류프 대포 등 당시 첨단 무기들이 총동원되어 9월 15일 하루 동안 2천200명에 달하는 전사자가 발생했다. 일본군 전사자가 180여 명, 청나라군 전사자가 2천여 명이었으니 일본의 압도적 승리였던 셈이다. 
이 하루 동안 맨몸의 평양 시민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지옥을 경험했다. 대동강에는 핏물이 흘러넘쳤고, 강간과 살상이 무차별적으로 자행되었다. 평양 시민 중 그 누구도 자신들이 왜 이런 지독한 운명에 처해야 하는지 이해하지를 못했다. 최초의 신소설인 이인직의 '혈의누'는 바로 이 ‘피눈물’이 흐르는 참혹한 전쟁의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여주인공 옥련은 청일전쟁의 와중에 겨우 일곱 살의 나이로 부모와 헤어지고, 심각한 부상까지 입는다. 그러나 ‘우연히’ 일본인 군의관의 도움으로 상처를 치료함은 물론, 그의 수양딸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서 신학문을 공부할 기회까지 얻는다. 옥련은 타고난 명석함과 성실함, 긍정성으로 우수한 학업능력을 발휘하지만 일본인 군의관의 전사로 다시 오갈 곳이 없는 고아 신세가 된다. 그 순간 ‘우연히’ 조선인 청년 구완서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 공부도 하고 결혼도 하고, 부모님과도 재회한다.

 

작가 이인직은 옥련이라는 인물로부터 부모의 자양분, 부모의 그늘을 모두 제거하고 있다. 그 자양분에는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 역시 포함되어 있다. 옥련은 일곱 살 때 부모와 헤어져 일본으로 건너가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만큼 전통적 조선의 문화, 풍습, 정신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오히려 미국과 일본의 문화와 풍습, 정신이 그 부분을 채우고 있어 옥련을 딱히 ‘조선인’이라고 이름 붙이기 어렵다. 일종의 정신적 무국적주의자인 셈이다. 이광수 '무정'의 주인공 이형식 역시 고아로 설정되었던 것을 보면, 근대 초 우리 작가들은 젊은 세대들을 부모 세대와 분리시키는 일에 특별한 책임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듯하다. 전통적 조선의 정신을 물려받은 기성세대들이란 조선의 영토를 청일전쟁의 격전지로 내어준 무능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혈의누’란 ‘피눈물’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그 피눈물은 무력한 조선의 현실에 대해 작가 이인직이 흘리는 피눈물이기도 했다. 이 피눈물 속에서 이인직은 새로운 조선 건설을 꿈꾸지만 그 조선 역시 희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신적 무국적주의자인 ‘옥련’과 같은 아이들이 추구한 것은 일종의 ‘조직공동체’이지 ‘조선’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못난 아비라도 그 아비를 부인하는 순간 ‘나’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역사에 대한 분노와 조급함 속에서 이인직은 이 평범한 진리를 잊고 있었다. 최근 일본 아베 총리가 ‘일`중 사이의 우발적 충돌’을 언급했다. '혈의누' 이후 120년이 흐른 지금 일본과 중국 사이의 충돌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정혜영 대구대학교 기초교육원 초빙교수

출처 / 매일신문 2014.02.08 201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