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심보선,「첫 줄」(낭송 장인호)

cassia 2016. 1. 12. 03:48

심보선,「첫 줄」(낭송 장인호)

 

 


심보선, 「첫 줄」

 

첫 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써진다면
첫눈처럼 기쁠 것이다.
미래의 열광을 상상 임신한
둥근 침묵으로부터
첫 줄은 태어나리라.
연서의 첫줄과
선언문의 첫 줄.
어떤 불로도 녹일 수 없는
얼음의 첫 줄.
그것이 써진다면
첫아이처럼 기쁠 것이다.
그것이 써진다면
죽음의 반만 고심하리라.
나머지 반으로는
어떤 얼음으로도 식힐 수 없는
불의 화환을 엮으리라.

 

시_ 심보선 –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경」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눈앞에 없는 사람』 등이 있다.

낭송 – 장인호 – 배우. 영화 〈고지전〉, 〈해결사〉 등에 출연.
출전_   눈앞에 없는 사람 『눈앞에 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음악_ Dynamateur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심보선, 「첫 줄」을 배달하며


첫!은 순서가 아니다. 숫자는 더구나 아니다. 첫은 개벽, 처녀림이 내 뿜는 숨결, 미래, 혁명이다.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의 첫 줄은 어디로 부터 오고 있을까. 꽃, 별, 묘지, 바퀴, 사랑의 잿더미를 뒤적이는 손에서 오고 있을까. 

 

어떤 불로도 녹일 수 없는 첫줄! 그리고 반은 어떤 얼음으로도 식힐 수 없는 불의 화환을 엮을 수 있는 첫줄을 위해 ‘나뭇가지가 나뭇가지에게 초록색 성호를 그어주고/ 꽃이 꽃에게 은밀한 꽃말을 속삭여 주고/사람이 사람에게 불멸의 어깨를 빌려준다?’ 이윽고 오고야 말 봄날을 기다린다.

 

눈부신 첫아기를 꿈꾸며 시인들은 올해에도 기쁘고 슬프게 첫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이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별뜨락새벽산책 시&그리움